“말씀을 잘 깨닫던 메뉴카”
메뉴카는 처음 한국에 와서 신대원을 다닐 때 집에 두고 온 딸이 너무나 걱정되고 그리워서 네팔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그때 내적 치유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가 쌓여 있고 그런 삶이 아니고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고 이제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그 말씀은 메뉴카의 깊은 영혼 속으로 들어가서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 가운데서 슈랜드라 목사님은 간증에 이어 외국인 예배에서 설교가 너무나 감동이었는데 한 부분만 함께 나눕니다.
-슈랜드라 목사님의 설교-
네팔에서 2015년 커다란 지진을 겪었습니다. 이후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 약 70명의 신도들이 교회 밖 천막에서 2주간 지냈습니다. 그때 하루 3번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예배하며 예수님과 아주 친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성경 읽기에만,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기도에만 힘쓰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아무도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할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네팔에서 2015년 커다란 지진을 겪었습니다. 이후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 약 70명의 신도들이 교회 밖 천막에서 2주간 지냈습니다. 그때 하루 3번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예배하며 예수님과 아주 친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성경 읽기에만,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기도에만 힘쓰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아무도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할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고충은 화장실 문제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한 70명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화장실을 써야 했습니다. 교회 근처에는 빈터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거처로 삼았습니다. 화장실이 야외에 있어서 사용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네팔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고난을 겪을 때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옷을 가지고 나왔지만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고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밤에 덮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아내 메뉴카가 제게 말했습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여호와께 꾸어드릴 때가 되었네요.(잠언 19:17)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몇 명만 할 수 있을 거예요. 할 수 있으면 하되, 불평은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지요.” 이 말을 들었는데도, 사람들을 보면 불평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곧 저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이 제 위치를 되돌아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고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나서 4:9~11 말씀이 저의 내면을 보게 했습니다.
욘4:9-11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박 넝쿨로 인하여 화를 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성내는 것이 잘한 일이옵니다." 하더라.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기르지도 아니하였으면서도, 하룻밤에 나와서 하룻밤에 없어진 그 박 넝쿨을 긍휼히 여겼거늘 자기들의 오른쪽과 왼쪽도 분별할 줄 모르는 십이만 이상 되는 사람들과 많은 가축들이 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부당하냐?" 하시니라.
욘4:9-11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박 넝쿨로 인하여 화를 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성내는 것이 잘한 일이옵니다." 하더라.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기르지도 아니하였으면서도, 하룻밤에 나와서 하룻밤에 없어진 그 박 넝쿨을 긍휼히 여겼거늘 자기들의 오른쪽과 왼쪽도 분별할 줄 모르는 십이만 이상 되는 사람들과 많은 가축들이 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부당하냐?" 하시니라.
말씀을 제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제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고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았으며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됨을 보았습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4)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당신의 손과 발이 되게 하시고 도구로 사용하시옵소서.’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홀리네이션스를 통해서였습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편 138:3) 우리의 도움과 동료 교회의 협조와 안내로 마카완푸르 팔룽, 아마르쿠 다하딩, 장히티, 그리고 누와코트 지역의 300 가구가 구호물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천막과 음식을 위해 7천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은 주거지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카트만두에서는 방을 빌리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을 향했고, 하나님은 묻기도 전에 돈을 마련해 주셔서 이제 22가족이 44개의 방에서 지내고 있으며 희생자 가족 어린이 30명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 희생자들의 집을 짓는데 2만 3천불을 사용했고 현재 7명의 여성에게 재봉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 양육 받은 메뉴카는 요즘 디자인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으며 동시에 실업여성과 극빈여성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기초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으로 쓰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걸으려 애쓰는 자녀이기 때문에 풍족히 주십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 의지로 섬깁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책임 맡기를 싫어합니다. 편리함이 보장되어야만 그리스도를 섬기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구주라 말하지만 삶의 주인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의 소원, 의지, 욕구, 야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욕구, 목적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주님이십니다. 크리스천의 믿음이란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혁신적 믿음입니다. 이 시간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내게 겸손, 신실함, 부지런함, 그리고 복종심이 있습니까? 예수와 복음에 온전히 헌신하면 이런 특징이 내게서 드러납니다.(마가복음 8:35; 로마서1:16)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가 권세와 구원의 유일한 근원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8:18; 요한복음 14:6)
복종의 교훈을 잘 배우고 나면 –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우리를 ‘친구’라고까지 부르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3~15) 예수님의 친구이신 여러분, 요한복음 10:10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읽고 이 자리에서 결심하십시오. 이 세상의 종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온전히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그의 종이 되기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친구요 아들이요 상속자, 곧 공동상속자요 영원한 나라의 시민으로써 사랑받으므로 잡혀서 종노릇하신 하나님의 종이신 예수의 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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