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찾아간 사마리아 여인.”
김연실 권사님은 예수님을 처음 믿은 해는 2002 년이었고 우리의 만남은 바로 얼마 되지 않았을때부터 14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말 24 시간을 쪼개 쓰고도 모자랄것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그 열심에 전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두지 않고 혼자 미장원을 운영하기에 너무나 바쁜데 손님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매일 주님의 이야기를 카톡을 통해서 퍼 나르고 주님 이야기를 퍼트립니다. 처음 예수님을 아직 모를 때 미장원 강습을 받는데 원장님이 권사님보고 꼭 사마리아 여인 같다고 하면서 요한복음 4 장에 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서 읽어보니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이라고 쓰인 것을 일고는 “뭐야? 나는 남편 한 명하고 사는데 내가 사마리아 여인 같다고?” 하고 덮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어서 교회에서 복음송을 부르는데 그 가사가 와서 마음을 울리더라는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 에와 생수를 마셔라
오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생수를 마신 사람은 그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유대인으로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셨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남이 상종하지 않는 기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계속 목이 마르는 물을 마시는 영혼들에게 목마르지 않는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권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물동이를 남겨두고 사람들을 기피해서 사람들이 없을 때 우물가에 갔던 그 여인은 마을로 달려가서 메시야를 전하는 전도자로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교회는 다녔지만 목마른 세상의 물만 계속 찾아 다니고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생수를 마신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를 삶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은 비그리스도인과 별반 다르지 않는가? 예비 며느리들의 혼수 문제에 간섭하는 시어머니 권사님들이 이리도 많은가. 주일 설교에 아멘한 후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이제 입술의 아멘이 삶의 아멘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멘’은 단순히 형식적인 구호 열창이 아니다.
목숨을 건, 삶의 현장에서의 헌신이다! 아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들 아무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는지를 전혀 못느낄것입니다.
김연실권사님은 이런 고백을 보내왔습니다 “할렐루야! 세상에 저같이 어둡고 슬프며 미련하고 약한 것들을 구원하여 들어 쓰시려는 주님의 은혜에 늘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교차하며 영광으로 여깁니다
하다못해 인간들의 사랑도 처음 경험할 때..못참고 말을 하지요. 사랑을 시작한 그 설레임과 마음에 꽉~차오르는 뜨거운 느낌을~~^^
그럴찐대..주님을 전할 때에 자신에게 확신이 들때까지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과 좀 더 친밀한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거절당할까 두려운 마음(결국 자존심)에 갖은 핑계와 변명을 하며 못 전하게 되니요.
그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이 그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 것을 증거하기만 하면 되는데..듣고 판단, 결단하는 것은 상대방의 몫, 인격적인 하나님이 그에게 선물주신 '자유의지'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이끌어 주시던가.. 우리 믿음의 분량대로 한 걸음만 떼면 주님이 9걸음 채워 주심을 자꾸 경험시켜 주시니요.
저도 처음에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무작정 들이대느라 마음상한 적도 많아, 성경말씀에 예수님이 뭐라시나~~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먼저 알아야 확신을 갖고 전하지요~^^
오늘도 그 예전의 나를 생각하며..겸손. 겸손. 겸손!!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