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가르쳐주신 금식기도”
주님은 40 일 금식기도를 먼저 솔선 수범해서 보여주시고 금식기도를 하기 전에는 사탄과의 승부를 겨루거나 병자를 고치거나 하늘나라 비밀을 먼저 전해주시지 않으셨고 금식기도를 하고 시작하셨습니다. 만약 금식기도 하지 않고도 그냥 먹고 기도하지 뭐 금식까지 하면서 하냐? 라고 하는 말이 옳다면 금식기도를 모범으로 보여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 6 장에 금식기도에 관하여서 이렇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마6:16 또 너희가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슬픈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금식하는 것을 보이려고 그들의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은 그들의 상을 받은 것이니라.
마6:17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마6:18 그리하여 네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히 계시는 네 아버지께만 보이게 하라.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 주님께서 “너희가 만약 금식을 한다고 하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당연히 금식은 안 해도 되는 것인데 만약 금식을 한다면~~ 이렇게 말씀하신 것 아니고 “너희가 금식할 때에”라고 말씀하셔서 금식은 마치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고 신자로서 해야 할 일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간질 하는 환자를 고치지 못했을 때 왜 예수님은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더려운 영이 나가서 병 고침을 받았는데 자신들은 왜 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주님은 기도와 금식외에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9:28-29 그 후 주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은밀히 주께 묻기를 "어찌하여 우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니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종류의 일은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
이 말씀에 개혁개정은 금식이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KJV 에는 금식이 분명이 쓰여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금식기도가 한 수 높은 능력의 기도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한데 사람은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먹는 것에 생명과 건강이 딸려 있다고 생각하기에 금식이 싫기도 하고 멀리하고 싶은 영역입니다. 그리고 금식을 하면 건강을 해친다고들 생각을 합니다. 한데 실지로 금식이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경험을 했을 때 더 건강해진 것을 미국에서 온 교인이
오히려 건강해지고 치유가 된 것을 고백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만약 내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다면 아무리 금식기도를 하고 더 건강해질까? 라고 수긍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 금식기도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금식기도를 하고 우선 건강 문제를 이야기 하면 일년 넘게 이렇게 하면서 오히려 아프지 않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약속을 체험하면 금식기도를 계속 할 기쁨을 가질 것입니다.
마6:18 그리하여 네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히 계시는 네 아버지께만 보이게 하라.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NIV 성경을 보고 번역한 개혁개정에는 “드러나게”라는 단어가 빠져 있고 그냥 갚아 주시리라 하고 쓰여 있는데 KJV 에서는 단어 하나가 더 있는데 “드러나게(openly)” 가 확실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는 약속을 언제나 항상 지키시기에 홀리 행복동에서는 기적을 상식처럼 보며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 기쁨을 맛보면 금식기도를 막아도 막지 못하고 더 하고 싶어집니다.
토요일 새벽 공부시간에 저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제 두어달만 지나면 나이가 70 세가 되는데 우리 다달이 엄청난 지출을 하자 마자 몽골에 난방비를 500 만원을 빨리 보내야 될터인데 ….이렇게 숙제를 가지고 살고 싶으세요? 그리고 500 만원을 10 월 첫 주일에 몽골이 이미 눈이 많이 와서 추운데 빨리 보내야지 라고 기도하면서 마련되자 마자 돌아서니까 미얀마 탕목사님이 12 월에 집에 갈 것인데 그때 비행기 표를 사면 비싸니까 지금 사게 해 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 모든 돈을 다 털어서 바로 주고 그런 삶을 선택하고 싶습니까?”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아니라고 고백들을 많이 했습니다. 한데 우리는 약속을 언제나 신실하게 지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기에 30 년 선교사의 행진은 행복한 행진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우리 집안 걱정도 아니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온 가족 여러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데 그런 길이 과연 행복하고 주님 가신 그 길을 가고 싶으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한데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공식대로 할 때 드러나게 상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1 순위로 응답해 주시기에 앞서간 주님의 심복 사도바울이 한 고백을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엡3:8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자 보다도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이방인들 가운데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요함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께서 드러나게 갚아주시는 이 상은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주님의 것으로 부요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품에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처럼 알지 못하는 양식이 우리를 배부르게 해 줍니다.
요4:32-34 그러나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음식이 있느니라."고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누가 주께 드실 것을 가져다 드렸는가?"라고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 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