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리의 설교”
“이 설교는 1744 년 8 월 24 일 옥스포드 대학의 성 마리아 예배당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하면서 그날의 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 마리아 예배당에서 하는 설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렇게 될것이다……” 라고 예상한 데로 그후 강사직에서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성서적인 기독교”를 먼저 말하고 다음에 거기에 근거한 질문을 했는데 우리 자신들에게도 한번 비추어 보면 좋을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의 설교는 너무나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 강사직에서도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의 설교 - 먼저 나는 묻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지금 어디에 존재합니까? 어디에 이런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는가를 말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주민들이 모두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해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입니까? 주민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이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무엇인가에 부족을 느끼도록 방치되어 있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주어지는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민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도록 그들을 촉구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민들이 모두 자비로운 마음과 친절한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몸에 지닌 나라는 ,(골3:12) 어디에 있습니까?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말 혹은 행위로라도 정의 자비, 진리를 거역하지 않고 모든 점에서 자기들이 사람들에게 바라는 대로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해주는 나라는 어느 나라입니까?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과 합치하지 않는 다면 우리가 모든 타당성을 가지고 그 나라를 기독교 국가라고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형제들이여, 나는 당신들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간청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미치광이 혹은 바보로 간주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들을 향하여 누군가가 매우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특히 이 시간에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언제 어느 때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나는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한 탄원을 듣지 않겠다” 라고 말씀 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비록 노아나 다니엘이나 욥이 이 나라에 있다고 해도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구원바디만 해도 좋다”라고 말씀하실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이처럼 솔직하게 이야기 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원컨데 내 손에서 축복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여 당신들의 가슴에 강철을 붙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들은 마음 속으로 “당신이 나를 설득한다 해도 당신은 나를 믿게 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서 “주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그 사람에 의하여 구원을 보내지 마소서. 이 사람에 의하여 구원을 받기 보다는 차라리 내 피 속에서 멸망 하도록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형제들이여, 모든 장관들, 대학이나 학원들 또는 여러 학회의 학장이나 회장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어(롬5:5) 있습니까? 우리의 기질이 하나님의 그것과 같습니까? 우리의 생활은 그 기질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그 거룩하신 분처럼 모든 행실이 거룩한 자입니까? (벧전 1:15)”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은 “성령으로 충만해(행 2:4)” 있습니까” 당신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초상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의 마음의 모든 생각, 당신들의 모든 기질이나 욕망은 당신들의 높은 천직에 부합합니까? 당신들의 모든 말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그것과 같은 것입니까? 당신들의 모든 행위 가운데 고결함과 사랑이 존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함이요 오직 하나님으로 충만한(엡 3:19) 마음에서만 넘쳐 나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벌레인 사람, 구데기 같은 인생”의 성질이 초연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은 성령의 열매로 (갈5:22) 가득 차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합니까?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립하려는 사랑과 열심으로 충만해 있습니까? 당신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든 연구 목적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요 17:3)”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합니까? 당신은 그들에게 날마다 사랑만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 것이요, 사랑이 없으면 모든 학식은 단순히 빛나는 무지, 거만한 우둔, 정신의 번뇌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당신이 가르치는 모든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전 인류를 사랑하게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신학을 공부하고 당신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지망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만 그들이 모두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로 여기고 말하는데 불과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대해 성별 되어 있고 거룩한 일들을 통해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모범이 되고 있습니까? (딤전4:12) 우리의 이마와 마음에 “여호와께 성결”(출28:36) 이라고 씌어 있습니까? 자신의 몸을 깨끗하고 존귀하게 보존하고 있습니까?(살전 4:4)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당신들 중에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자(빌3:19)는 없습니까? 당신들 중 대부분은 습관적으로 양심의 가책이나 아무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자가 아닙니까? (출20:7)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 이 세상이나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죽고 있습니까?(마 6:20)
당신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경박한 한 세대인 것은 여기에서 나온 결과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경박하고 서로 간에 경박하며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경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 중에는 매주 단 한 시간이라도 은밀한 기도를 위하여 힘쓰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당신들 중 누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영의 활동, 인간의 영혼 안에서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활동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때때로 행해지는 때를 제외하고 당신들은 성령에 관한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만일 누군가가 어느 쪽일 거라고 미리부터 생각해 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는 묻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종교에 속해 있습니까?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당신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감당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 나의 형제들이여, 이것이 모슨 기독교 도시입니까?
실제로 인간의 관습을 따라 말한다면 기독교, 증 성서의 기독교가 다시 이곳의 종교가 된다는 어떤 가능성이 존재합니까? 우리 가운데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성령에 충만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생활한다는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기근, 전염병을 보내시겠습니까? 혹 칼과 로마의 외국 군대를 보내시겠습니까? “오 주여 차라리 우리를 당신의 손에 빠지게 하소서 그래서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삼하 24:14)”
주여 구원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합니다. 우리가 이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오, 이 원수들로부터 우리는 보호해 주옵소서. 인간의 도움은 헛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당신의 능력의 위대함으로 죽도록 정해져 있는 자들을 보호해 주옵소서. 당신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원하는 대로가 아니요,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