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신앙인의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조선일보에서 종교전문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신앙인답게 사는 게 어려운가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 크리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신교계에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봉사도 열심이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가면 신앙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산다는, 신앙과 일상의 불일치를 꼬집는 표현이다. 이 기사처럼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 크리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온갖 비리와 이중 생활을 하는 것만 본다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봉사도 했으면 그것으로 신앙인가보다 라고 생각을 할 터인데 하나님께서 참 크리스천의 삶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하셨던 시간들은 참으로 받을 수 없는 축복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을 아들로 삼은 분외에도 다른 미국인도 부부와 같이 정말 많이 만나서 함께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하며 옆에서 지켜본 분입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늘 와이셔츠를 떨어지도록 너덜거리면서 입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한데 실지로 월급은 많은 고액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다른 미국인과 한국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딸을 두고 한국 부인이 집을 나가버려서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여자 아기를 남자가 혼자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딸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엄마의 품이 그리워 밤 낮 숨 넘어 가게 우는 이 여자 아기를 자신들의 아이로 입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해 주면서 이들은 자기 찬 자녀도 독립심을 키운다고 태어 난지 얼마가 지나면 따로 재우는데 밤새 우는 아기를 부부가 자는 가운데에 아기를 뉘 우고 재우니까 울음을 그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웃으면서 “너무나 귀여워요” 라고 아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지내면서 그런 삶을 특별히 튀어 난 삶이 아니고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하는 여러 명을 보았습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들에게는 아주 철저하게 검소하게 살면서 보통 때도 아주 밝고 명랑하게 사는 모습은 참으로 우리도 닮고 싶은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지는 못해도 오갈 데 없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든지 열려있는 아버지의 집을 준비하고 행복동에서는 섬기는 함께 하는 행복동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학생들은 역시 자국으로 돌아가서 그 나라에 행복동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슈랜드라 목사님도 고아같이 돌보지 못하는 딸을 데려다가 집에서 돌보면서 공부를 시키고 고등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어서 공부하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특별한 일이 아닌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에도 크리스천으로 사는 모습은 작은 천국의 지점인 것을 보게 됩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답게 살겠습니다'란 이름의 운동이 있다. 지난 2014년부터 7대 종단 평신도 단체들이 국민 각자가 본분을 다하자는 취지로 벌이는 운동이다”
남편은 직장 동료가 소아마비 장애인을 아들로 입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실지로 그 아들을 보았고 그들의 삶을 같이 보았습니다. 한데 이분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에 한번 만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을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남편은 같은 직장에서 매일 생활을 하면서 그들과 같이 일을 하고 또 교제하며 때로는 부부를 같이 초대해서 식사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같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 에도 크리스천이고 항상 크리스천의 삶을 보여준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그런 분들을 보게 해준 우리 주님께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