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16)
웨슬리의 일기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쓴 “웨슬리의 생애”보다 직접 웨슬리가 쓴 글은 그의 신앙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 드리며 사도행전 후편을 마치 영화로 보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1703 년에서 1791 년 그 당시에 88 세의 장수를 했던 비결이 웨슬리의 범사에 감사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오직 감사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진흙을 뒤집어 쓰고도 감사하는 웨슬리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6월 24 일
8 시 전에 엄프리스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휴식을 취하고 밀물 전에 솔웨이 하구까지 가야겠기에 곧바로 떠났다. 하구 밑에 있는 여관에서 짐을 풀기로 하고 큰 길을 벗어나 우리 앞에 보이는 집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10 분도 못가서 던칸 라이트가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가 발이 헤어나와 무사했다. 되돌아가고 싶었으나 던칸이 자기 왼쪽으로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오면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계속 나아가다 조금도 못 가서 말 어깨까지 빠지고 말았다. 두 번이나 튀어 오르려 발버둥쳤는지 그때마다 더 깊이 빠졌다. 세 번째 시도에서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린 모두 진흙구렁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진흙으로 뒤집어 썼다. 그래도 다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으니 하나님께 감사 드릴 뿐이었다. (이럴 때 우리 같으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진흙으로 뒤집어 쓰고 다친 곳이 한군데도 없다고 하나님께 감사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셨으면서 왜 이런 고통을 주나요? 라고 투덜댈 것입니다. 웨슬리 일기 전체 어디에도 하나님께 투덜대는 표현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8 시가 지나도록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친절한 사내가 우리와 함께 건너 자기 갈 길이 있는데도 모래톱을 지나 스킬버니스로 가는 길목까지 2 마을이나 안내하였다. 스킬버니스에 마침 작고 깨끗한 집이 있어 편안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9 월 2 일
플리버스에 있는 유대교 성당에서 설교를 부탁 받고 오후 2 시경에 설교를 시작하였다. 저녁엔 항구에 있는 화이트 필드목사가 자기 방에서 설교하여도 좋다고 하였으나 그 넓은 방도 모여드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수 없었다. 설교가 끝날 즈음 내 뒤쪽에 있는 창문 중 한군데서 큼직한 돌이 날아와 내 발치에 떨어졌다. 다른데 떨어졌더라면 누구나 잘 보았을 터인데 덕분에 다치거나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사건이 생길 때 우리도 이렇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9 월 7 일
어제 산에서 달려 내려오다 허리를 다쳤다. 오늘 더 악화되었으나 비나드 성으로 떠났다. 햇빛이 뜨겁게 내려 쬐어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깨끗이 나았다.
계속해서 나흘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곳에서 설교하였다. 처음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 그것도 야외에서 8 일간 설교를 하면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탈없이 버티었다. 마지막 날에도 첫날과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웨슬리의 이런 자세는 그렇게 88 세가 되어도 오직 부름의 부르신 상을 위하여 달려갈 수 있는 참 주님의 제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기운은 쓸수록 많아진다”라고 웨슬리가 고백한 말을 우리도 고백하며 강건한 주님의 군사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독수리가족
엄마 독수리는 사람보다 현명해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강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다 장성해서는 교육하기가 힘이 들기에
애기 때부터 마음은 안쓰럽지만
높은 벼랑에서 새끼를 떠다 밀어요
사랑이 없어서도 아니고
새끼가 무서워하는 것 다 알지만
엄마 독수리는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태풍을 이기고 비바람을 이기려면
더 높이 날라야 살수 있기에
인정 사정 없이 떠다 밀어요
강인한 훈련은 강인한 새가 되어서
비가 오기도 전에 다른 새들은
낮게 나르지만 독수리 가족들은
전혀 문제가 없어
태풍을 뚫고 높이 높이 올라가
독수리는 언제나 태양을
보며 살아요
우리도 독수리 처럼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