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11)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행20:24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온전히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이 고백을 똑 같이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는 것을 존 웨슬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4월 1 일
점심때 방이 비좁아 본케스터 다리 근처에 있는 들에서 설교하였다 설교하는 동안 바람이 심하고 강하게 정면으로 불어왔다. 오후에 엘워드에 도착하니 목이 심하게 부어 올랐으나 고통을 견디며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이튿날 좀 나았기에 1 시경 웨스트우드 강변에서 설교하고 이어 4 시에 엘워드 장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중에 설교하였다. 처음엔 말소리가 작아 몇 명만 알아 들을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소리에 힘이 생기면서 끝날 즈음엔 고통도 사라져 버리고 모든 사람이 똑똑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도 기운은 쓸수록 많아진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5 월 27 일 일
7 시에 마을 다른 쪽에 있는 고등하교 운동장에서 설교하였다. 아침이라 대단히 쌀쌀했다. 저녁엔 폭풍이 불었다. 그럼에도 칼른 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예정대로 설교하였다. 바람 때문에 처음엔 곤란을 겪었지만 곧 잊고 말았다. 청중들도 한 시간 반이나 움직이지 않고 있고 나도 내 영혼을 쏟아 설교 할수 있었다. (전에 영국에서 수련회 할 때 8 월에 실내에서 했어도 가디간을 걸쳐야 될 정도의 온도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폭풍이 부는데도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한 시간 반을 집중해서 들을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을 보게 됩니다.)
“질서정연한 설교와 집회”
11 시경 말을 타고 떠났다. 네안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여관 주인이 찾아와, “손님, 당신이 토요일 제게 주신 책을 이곳 귀족들이 읽어보더니 대뜸 설교를 듣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였다. 승낙하자 종소리가 울리고 순식간에 교회 안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남부와 북부의 차이가 이처럼 심하다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고 무례한 언동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으며 오로지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6 월 6 일
이튿날엔 날씨가 사나워지고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대학 강당에서 설교하였다.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들으려고 모여드는 자가 이렇게 늘어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 께만 집중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진지하게 하나님말씀을 경청하셨다.
6 월 7 일
이 지역에서 하나님께선 자신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살펴보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몇 달 전만 해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기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사무엘 메곳트는 바나드 카슬리 감리회에 매주 성 금요일은 금식과 기도의 날로 정하였다. 첫 번째 모인 성 금요일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셨다.
그 후로 그 역사는 점점 크게 일어나 주위에 있던 감리회에서도 그 소식을 듣고 그들도 같은 식으로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그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내렸다. (홀리네이션스에서는 매주 목요일을 하루 금식기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정말 놀라운 역사를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6 월 10 일
8 시경 인버네스에 도착하였다. 비가 오기 때문에 안에서 설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한 장소도 나서지 않아 여기에 온 것이 헛수고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10 시에 교회로 갔다. 예배를 마치고 프레이저 목사가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고 같이 차를 마셨다. 차를 들면서 그는 몇 시에 설교를 할 것인지를 물었다. “5 시 반 경에 하지요” 하였다. 그 큰 교회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전에 이처럼 영혼의 자유를 느껴 본적이 없었다. 후에 다른 목사들도 우리를 여관으로 찾아와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하였다. 1 백 마일을 멀다 않고 찾아온 것이 바로 이런 날 때문이 아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