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7)
설교가로 아주 유명한 목사님들이 “기도”에 관한 주제가 가장 힘이 들다고 하는 글은 정말 쇼크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아주 단순한 믿음으로 모든 분야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관한 사실도 일기를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1746 년 3 월 17 일 월
나는 뉴추카슬을 떠나면서 다운즈씨와 세피드씨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스네톤에 왔을때 다운즈씨는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갈수가 없었다. 세퍼드씨와 내가 스테폰을 떠났을 때 내 말이 지나치게 다리를 절어서 나도 꼼짝없이 발이 묶이지나 않나 하고 염려가 되었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 말은 발을 땅에 잘 대지를 못했다. 그렇게 해서 7 마일이나 갔을 때 나는 완전히 지쳤다. 최근 몇 달 동안 가끔 아팠던 것보다도 훨씬 더 머리가 아팠다. 내가 여기서 확실히 아는 이야기는 있었던 사실 그대로이다.
누구라도 그것을 좋게 보는 만큼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사람이나 짐승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아니 아무것도 없이라도 고칠 수 없을까?” 그 생각을 하는 즉시 내 피곤은 사라졌고 두통은 멈추었다. 그때 같은 순간에 내 말이 저는 것도 없어졌다. 그날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도 내 말은 잠시도 쉬지 않고 걸었다. 이거야말로 정말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7 월 6 일 일 런던에서 남녀 지도자들과 대체로 의견을 나눈 후에 우리는 감리회에 속한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것을 끊기로 한다면 생활비를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돈이나 건강을 헤치지 않으리라는 의견을 합의를 보고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하기로 결의 하였다. 수십 년간 계속되어온 습관을 끊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생각을 했다. 따라서 처음 3 일 동안은 하루 온 종일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반은 잠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사흘째 되는 날 수요일 오후에 내 기억력은 거의 완전히 마비가 된 것 같았다. 저녁에 나는 이것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였다. 목요일 아침에 내 두통은 사라졌다. 내 기억력은 어느 때 못지 않게 왕성해졌다. 뿐만 아니라 조금도 불편한 것이 없었고 바로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오히려 더 유익한 것을 많이 얻게 되었다.
o육체의 치유 이상으로 마음이 상한 자를 새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는 더 감동이었습니다.
6 월 27 일
저녁 6 시경에 나는 지난 해에 내가 설교 하였던 곳으로 갔다. 우리의 찬송가 부르기를 채 끝나기도 전에 유명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 수하에 병사들과 북을 치는 사람들과 깡패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북치기를 그쳤을 때 병사 한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군중이 지르는 고함소리에 금방 빨려 들어갔다. 그들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그들은 점점 더 맹렬해지지 시작하였다. 약 15분간을 기다린 후에 그들의 소동이 점점 더 맹렬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서 그 깡패들의 두목 격인 사람을 만나서 악수하였다. 그는 즉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댁에까지 무사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무도 목사님한테 손을 못 댈 것입니다. 여러분 물러서시오. 길을 비켜 드리십시오. 누구든지 이 목사님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나는 그를 때려 눕히겠습니다.” 우리는 아주 평온하게 걸어갔다. 나를 안내하던 사람은 키가 몹시 큰 사람이었는데 목을 쭉 빼서 사방을 둘러 보면서 누가 혹시 거칠게 행동하지 않나를 살폈다. 그래서 우리는 무사히 빠져 나왔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 헤어졌다. 나는 그가 간 후에도 약 반시간 가량 길거리에 서있었다. 이제는 자신들의 분노도 잊어버린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결국 기분이 몹시 좋아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