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2)
몇 년 전 고석만 선교사님의 안내로 영국에 브리스톨에 존 웨슬리가 섬기던 교회 앞에 웨슬리의 동상은 말을 타고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과 교회 이층에는 사택을 둘러보았을 때 지금도 그대로 보전되어 있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온 세계는 나의 교구”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이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이루는 일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계속 얻게 됩니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야외에서 설교를 할때도 천명, 천오백명이 모이던 존 웨슬리! 가장 강박한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가는데 마다 술집이 자진하여 문을 닫고 회심을 하여 온 나라가 한 사람의 교구로 바뀌었는데 같은 웨슬리가 성령을 받기 전에 미국에서 그가 설교할 때 그의 일기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6 월 27 일 화” M모씨의 태도가 상당이 냉정한 것을 관찰하고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목사님이 하는 것이 하나도 마음에 안 듭니다. 목사님이 하는 모든 설교는 특정 인물들을 온통 비꼬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목사님의 설교를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자신을 욕하는 설교를 우리는 듣지 않겠습니다. 그밖에도 그들은 자신이 프로테스탄트라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종교인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종교에 관해서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개인적인 행동도 그렇습니다.
여기 오신 이래 즉 싸움과 논쟁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고장에서 목사님의 말씀에 한 마디도 신경 쓸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설교를 아무리 길게 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어차피 아무도 듣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기에는 너무나 열이 나 있었다. (이런 미국에서의 생활은 1 년 9 개월에 끝을 맺고 실패자의 모습으로 그는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3 월 4 일 토”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설교를 그만 두어라. 너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누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 나는 뵐러에게 내가 설교를 그만 두어야 할지 아닌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였다.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믿음을 갖게 되기 까지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
피어트 뵐러를 다시 만났는데 그 자신이 확실히 믿고 기도하는 산 신앙의 결과 곧 성결과 행복에 관하여 설명을 하였으며 그 말을 듣고 나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4 월 4 일 월, 나는 우리 교구에 있는 유태인 교우들과 대화를 하기 위하여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즐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는 수 많은 사람들보다도 그리스도 정신에 더 가까워 보였다.
“올더스게이트 에서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어느 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 시 15 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 다고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위해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악의적으로 나를 이용했거나 박해한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생전 처음 내 마음 속에 느낀 것을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간증을 하였다.
6 월 7 일 수, 나의 약한 마음이 이처럼 갈기 갈기 찢기우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믿음의 충만은 능력을 생활로서 증거할 뿐 아니라 그렇게 때문에 약한 자들을 또한 용납할 수 있는 독일의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 영혼이 새 힘을 얻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그리고 능력에서 능력으로 계속 달음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다음 석 달 동안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을 찾아 다니며 독일에서 지냈다.
“웨슬리의 생애” 책에는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 이후 성령충만하게 달려간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저자가 썼기에 웨슬리 자신이 쓴 일기보다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후에도 갈등이 있었고 자신이 전에 전혀 다른 신앙을 보여준 독일인 모라비아 교도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그들을 다시 만나면서 신앙을 돈독히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며 천국에 가기를 원하신다면 명심하세요. 당신 혼자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동지를 찾으십시오. 없으면 동지를 만드십시오. 성경은 혼자서 고독하게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