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훈련”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쫓아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시면서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라는 기도를 하셨으며 사탄과의 한판 승부를 벌리기 전에 40 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습관 →십분 정도 기도하고 나면 십 분을 넘게 기도할말이 없어서 눈을 감고 온 몸을 비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애인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시간이 즐겁지 않느냐고요. 기도는 빚쟁이 독촉하듯이 무엇을 요구하는 기도의 관념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 습관이 되어야 더 깊은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대가 조지뮬러는 이세상에 단 하나의 빈곤은 “기도의 빈곤이다” 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화, 목요일 중보기도는 두 시간 기도를 하는데 우리 기도 팀은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한데 그렇게 기도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10 분 정도 하고 더 이상 기도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의 훈련을 하기 위하여 눈을 뜨지 말고 그 시간이 5 분정도 느껴지도록 기도를 하자고 하니 정말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 내 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찬양이 진심으로 나올 때 우리는 참 기도의 의미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금식기도 → 금식기도는 단순히 굶식을 하는 목적이 아니기에 정한 때 밥을 굶고 배고프니까 잠을 자고 시간을 때운다면 아무런 금식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그런 기도를 하면 “금식(굶식)기도도 별 볼일 없구나” 라고 투덜 거릴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일주일에 두번 수요일과 금요일에 4 시까지 금식기도를 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감리교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하루 금식을 다 같이 하는데 이 금식기도의 열풍이 더욱 많이 퍼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금식한다고 배고프다고 잠을 자거나 밤 12 시가 되기를 기다려서 왕창 무엇을 먹고 배탈나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많은 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기도를 집중하지만 다른 생활은 일상생활을 그대로 같이 하기에 전혀 금식한다는 티를 내지 않습니다. “마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기도를 하며 자신과 민족의 회개를 하며 민족을 구한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받으며 우리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기도를 정기적으로 할 때 우리는 아주 단순한 식사에도 감사를 드리게 되고 그 단순한 음식을 못먹는 세계에 절대 빈곤층의 고통을 같이 느끼게 될뿐더러 주위를 다시 돌아보며 기꺼이 나눔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딤전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그 시간에 우리의 필요는 구하기 전에 다 아신다는 말씀대로 응답하시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