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말씀이 상담자”
많은 분들이 기도에 관한 것을 배우고 싶고 또 그런 내용의 책은 많은데 “기도”에 관한 주제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주제가 없다고들 고백합니다. 정말 많은 책을 읽어 보았는데 “기도는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책은 조지뮬러의 책에서 가장 많이 배웠습니다. 그 이유를 조지뮬러는 기도를 항상 말씀을 근거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지뮬러는 읽은 성경책을 가지고 세상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를 한 것이지 개인적인 욕구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즐거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르쳐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당신이 새로 기업을 경영하기를 원한다면 대학에서 경영학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가르침과 한국에 가장 뛰어난 기업을 창설한 삼성의 이병철 회장님이나 현대의 정주영회장님이 더 잘 보여 줄 수 있을까 한번 잠시 생각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832 년 4 월 20 일에 뮬러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장소 브리스톨을 향해 떠났습니다. 뮬러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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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소중한 영혼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건한 묵상과 기도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대처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교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매우 바쁠 때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역에 전념하는 것이 은밀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나누눈 교제의 부족함을 메워 줄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봉사의 질보다는 양에 더 신경을 쓰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살피고 기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은혜와 경건 중에 성장하는 위대한 비결입니다.
o 하나님의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께서는 뮬러와 크레익과 동역자로서 함께 브리스톨에 오게 하셨고 하나님의 은총은 뮬러가 덜 유명해지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을 시기하기 보다는 기뻐하게 해 주었다고 하였고 겸손한 정신은 큰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뛰지 않는 낮은 자리를 취하기 위해 몸을 숙인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들어 올리사 더 높고 위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먼저 뮬러는 크레익이 설교할 때 이런 마음의 태도를 가지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루셨습니다.
첫째로, 크레익은 그 자신보다 더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보다도 더 확실케 하는 능력을 위하여 더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셋째로, 그는 공적인 사역에 있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겸손한 정신은 하나님께서 더 충만한 성령을 소유하게 하셔서 그 이후로 그의 설교와 사역은 더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딤후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o 고아의 아버지
당시에 콜레라가 브리스톨에 만연하고 있어서 석달동안 계속되어 수 많은 고아들이 생겼습니다. 브리스톨에는 연일 장례식이 이어졌고 고아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고아원을 설립하기 전에 프랑케의 전기를 깊히 읽고 묵상하면서 고아원의 운영정신을 먼저 배웠습니다.
뮬러는 고아원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모든 신자의 의무와 특권은 그리스도의 대의와 사역을 돕는 것이다.
세상의 후원을 구하거나 의지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기구의 일들을 유지하거나 수행함에 있어서 불신자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주님의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어떤 이유로도 빚을 지지 않는다.
성공의 기준이 숫자나 재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리를 타협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증거를 손상시키는 모든 것을 피한다.
28 세가 채 되지 않은 시기인 1833 년 6 월 12 일에 그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그의 고아원 사역을 향한 최초의 발걸음이 되었는데 그는 아침 여덟시경에 거리에 나가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그들에게 아침 식사용으로 빵을 주고 한 시간 반 가량 그들에게 성경을 읽는 법을 가르치거나 읽어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가난한 성인들과 노인들에게도 같은 일을 했다. 그는 한 번에 삼사십 명에 이르는 그런 사람들을 먹였으며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주님의 공급하심도 늘어나리라고 확신했다. 크레익에게 상의하고 그는 150 명의 아이들을 수용할수 있으며 일 년에 10 실링으로 임대받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어떠한 상황에도 처음에 서약된 원칙들도 결코 포기된 적이 없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유일한 후원자로 감고 기도를 유일한 호소 수단으로 삼은 그 기구는 크게 확대되었으며 범세계적인 사역은 큰 축복을 받았다. 그는 그의 일기에서 모두 알고 있듯이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했다.
첫째: 고아를 돕기 위해서 시작하였고
둘째: 자기와 같은 가난한 사람이 그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했다고 한다.”
이 고백은 나 자신이 삼십여년전에 읽은 내용이지만 선교회를 운영하면서 늘 잊히지 않는 그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원하시며 그의 선하심과 전능하심 속에서 측량할수 없는 풍성을 나타내고 싶어 하시는 것을 늘 보고 있습니다.
철저한 성경연구: 하나님의 진리의 보화들을 그처럼 조직적으로 연구한 젊은이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또 읽었으며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여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 부분에서 경영학 교수와 경험이라는 교수와의 차이는 성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 아니고 이론을 가르치는 것과는 천지 차이가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은밀한 기도의 습관은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너무나 소중한 것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것을 그의 가장 고귀한 의무이자 특권으로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고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그의 마음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특히 부모를 잃은 궁핍한 어린 아이들에게 이끌렸습니다.
어제는 네팔에서 한국인 고아를 섬기는 선교사님에게서 감사인사를 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단카가 네팔을 향해 갈 때 우리는 단카를 키워 주신 한국인 선교사님에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단카는 네팔에 다른 가정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단카는 너무나 성품도 좋고 겸손해서 네팔에서 고아원 사역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 명의 고아를 돌보는 그곳에 그 선교사님은 전혀 누구신지 들은 적도 없지만 그곳에 고아들을 위하여 단카를 키워준 감사헌금으로 보냄으로 다른 고아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단카를 떠나 보낼 때 그런 소원을 먹자 우리 자체 지출도 엄청 많은데 하나님은 즉시 보내주셨습니다. 그 헌금을 받고 감사하는 전화였습니다. 물론 그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고아를 돌보게 후원을 해 달라고 요청한적도 없습니다. 우리도 열방을 향해서 많이 지출을 해야 하는 선교회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고아의 아버지이시고 그들을 품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시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아비 없는 자들의 아버지시며 과부들의 재판관이시라.”
단카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마마 제가 살았던 고아원에서 하루 지내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잘 지내고 있었고요 그리고 한국 선교사님 분들 잘 계십니다. 그리고 홀리네이션스에서 보내주셨던 헌금도 전달 했습니다. 한국돈 백오십 만원의 환율이 네팔 돈으로 바꾸어서 전달했습니다. 다들 행복해 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겐 켄디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아이들 만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게 되고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해야 할 꿈을 확실해 진 것 같습니다. 모든 것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