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엄마와 이모님, 최장로님, 최집사님을 뵙고 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 8 살 때였어요. 계모님과 동생 두 명과 함께 어린이날 서울의 어린이 대공원엘 놀러 갔었습니다. 다른 기억은 나지 않고 지금도 잘 떠오르는 것은 어린이 대공원 정문 입구를 지난 곳에서 계모님과 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계모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버려졌는데 대공원의 아저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집에 찾아 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걱정하시던 아버지께서 혼내시기에 계모님이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다가 그랬다고 했더니 계모님이 화난 얼굴로 언제 기다리라고 했느냐며 거짓말까지 한다며 나무 빗자로로 엄하게 구타하던……
어두웠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해질녘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던,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만 있었던 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 갔지만 분명히 계모님은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말씀 드렸는지요. 제가 14 살때 가출할 때 무서워서 팬티바람에 가출했고 남의 옷을 훔쳐 입었습니다. 집을 찾아갔던 8 살 때부터 가출할 때까지 저 때문에, 술만 드시면 계모님과 다투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계모님이 무서워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계모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한대라도 덜 맞기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일등을 하면 영리해서 약삭빠르다며 혼났고, 성적이 떨어지면 왜 공부를 그 따위로 했냐고 맞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똑똑한 우리 장남”이라고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배다른 동생이 초등학교를 같은 학교로 입학하였고 동생을 돌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잘 돌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저도 어린 나이라 사리분별이 온전치 못해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제대로 마음에 안들 때면 저를 때리는 계모님이 정말 싫었고 무서웠습니다. 그 무서움의 기억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에 정말 부담스런 트라 우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쑥불쑥 나타나 저를 힘들게 하고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
제가 구속되고 그 충격으로 인하여 신장혈액투석을 앓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동생은 제게 큰 실망과 원망을 갖게 되어 저와의 인연을 끓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제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관계회복을 원하였고 아주 가끔씩 저의 노력에 작은 반응을 보이던 동생이 작년 5 월의 가족만남의 날에 참석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전화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 관계회복이 되었지만 사는게 힘들고 어려워하며 찾아와 면회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만큼이라고 관계회복이 되었으니 저의 진심을 더욱 진실되게 전하면 관계가 더 좋아지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것을 믿으니 엄마께서 응원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울엄마, 자신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도 바울도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을 하였다는 사실이 제게 힘이 됩니다. 여전히 죽지 않고 날마다 살아있는 저의 옛모습과 또 현재의 내 자아이지만 울 엄마의 사랑과 기도와 함께 하면 저의 잘못된 자아는 죽고 제 안에 오직 예수님만 살아계실 줄을 믿습니다.
봄을 맞이하여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 순으로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는 각방의 동료들의 이부자리 세탁을 자원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수고하는 도우미들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어차피 저 혼자 하겠다는 생각이었으니 기쁘게 밟고 주무르게 합니다. 적지 않은 수량이어서 오랫동안 섬겨야 하겠지만 엄마의 아들답게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넣어주신 오렌지로 형제들과 나누는 잔치를 하였습니다. 오렌지 안에 담긴 세콤 달콤함에 넣어주실 때에 행복동 가족들의 마음이 담겨져서 인지 더욱 맛있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음식을 만들고 물질을 나누면 그냥 음식 나눔이 되고 물질 나눔이 되겠지만 그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기면 사랑의 섬김이 되는 줄을 믿습니다. 그저 물질을 나누는 고마움으로 전해지지 않고 천국의 복음이 전하여지는 사랑의 섬김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온전히 제대로 된 엄마의 아들로 살아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제 자신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어지길 기도합니다.
엄마는 조세형씨에 관한 이름도 꺼내지 않기를 말씀하셨지만 이 또한 제가 넘어야할 산이라는 생각합니다. 꺼내지 않고 담아둔 것이 지혜로운 처사는 아닐 것 같습니다. 부딪치고 고민하고 또한 반면 본보기로 삼아서 그런 모습으로 변질되지 않고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활관에서 도우미 일을 할 때에는 일반 죄수 복이 아닌 “사동 도우미”라는 알림 글이 등판에 새겨져 있는 특별한 자켓을 입고 있어서 누구나가 “사동도우미”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교도관님뿐 아니라 동료들도 허드렛일 등을 할 일이 생기면 저를 부르게 되지요. 물질이 아니어도 섬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정말, 아무런 거짓이나, 고민과 세상적 욕심 없이 오로지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저의 등판에 선명한 알림 표가 새겨져 있지 않더라도 저를 보는 동료들, 이웃들이 제가 예수 사랑을 전하는 “사랑도우미”임을 한방에 알아볼 수 있도록요.
엄마의 아들로, 엄마의 사랑으로 보듬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수리 날개 치듯 하는 힘과 능력을 주시어 전혀 피곤치 않으셔도 건강 생각하시고 엄마는 강건하셔야 합니다. 여전히 많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아들을 잘 보듬어주셔야 하니까요.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