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시고 보내신 이가 하나님”
98 세가 된 시어머님이 지난 금요일에 천국으로 가셔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고향인 충청도 홍성에 몇 년 전에 먼저 천국으로 가신 아버님 곁으로 묻으면서 그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본가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습니다.
처음 같은 대학 켐퍼스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 4 년을 같이 학교 영자신문사에서 일을 하면서 늘 나를 만나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계속 듣던 남편은 결혼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장로가 되어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 가문에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믿지 않는 집안 전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결혼 당시에 시 할아버지 시 할머니 모두 살아계시고 특별히 시아버님이 삼대 독자 외아들인데 자손이 귀해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기도해서 낳으셨다고 하는 불교와 유교적인 사상이 가득 찬 집안이었습니다. 삼대독자의 시아버님을 통해서 7 남매 손자를 얻으신 시할아버지는 서울로 공부하도록 모두 보냈습니다. 그리고 큰 집안에서 두 분만 사시고 계셨습니다. 남편다음으로 조부모님께 복음을 전하기로 기도하면서 결심을 했습니다. 결혼 후 처음에 나는 직장 생활을 하여서 상당히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 여름 휴가를 받으면 우리 부부는 해 마다 두분만 계시는 시골을 찾았습니다. 전혀 예수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당시에는 집안에 수도가 없어서 근처 냇물까지 가서 겨우내 두분이 제대로 빨리 못한 이부자리 담요들을 빨고 집안일을 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며칠을 같이 지내고 하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오년을 연속으로 그렇게 친밀하게 지내니까 할아버지가 동네분들에게 “예수님이 좋긴 좋은가 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예수 믿는 손자하고 손부가 와서 집안 일을 다 해준다”라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마음 문이 열리시자 밤에 두분 앞에서 “우리 부부는 밤에 잠자기 전에 예배를 드리는데 여기서 드려도 되요?” 라고 물으니 쾌히 승낙을 하셨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리면서 복음을 전했고 할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하셨습니다. 그 후 할머니는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우리 집에 계셨을 때 복음을 듣고 세례까지 받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시부모님께 복음을 전해서 두 분이 집사님이 되셔서 장례식장에 “000집사” 라는 축복의
글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대독자시면서 일년에 8 번을 제사를 드리던 집안에 정말 주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맞이하는 새해부터는 교회도 나가기로 정하신 시아버님이 처음 구정을 맞이하면서 제사를 이제 추도예배로 바꾸시기로 작정하시고 첫 추도예배 때 “조상님들께 아룁니다” 라고 편지를 써서 예수님을 이제 믿게 되어서 추도식으로 바꾼 사연을 낭독하시고 과감하게 추도예배로 바꾸던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금요일 밤에 천국으로 가셔서 일반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장례를 치르면 주일에 해야 했습니다. 가족이 많으니까 모두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기에 월요일에 발인을 하면 사 일장이 되는데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월요일에 충청도 홍성에 도착을 하니 장지를 파고 진두 지휘하는 집안에 대부 되시는 분이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원래 어제 발인인데 누가 사일장을 해서 월요일에 내려왔는지가 궁금해 했습니다. 둘째(저희 남편은 둘째 아들) 라고 대답들을 하니 그분이 날 자를 보고 신봉하는 분인데 우리가 간 월요일은 너무나 좋은 길일이고 만약 전날 왔으면 나쁜 날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웃었지만 형제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좋아했습니다. 홍성으로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하늘이 구름이 끼고 비가 올 것 같은데 형제들이 걱정을 해서 “왜 걱정을 가불해서 하세요? 우리 일정 마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주신 미션을 마친 것이 감사했습니다. 집안에 단 한 명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집안에 주님께서 보내셨고 구원을 하셨습니다.
그 기쁨의 감사는 사일장을 치르면서 거의 잠을 못잔 상태였지만 그 다음날에는 기도회를 같이 하고 하루 지나서 장흥과 광주 1000km 왕복하는 교도소 방문을 하고 디모데와 요한을 보고 왔습니다. 주님 주시는 새 힘은 하루 지나고 또 목요일을 맞이해서 하루 금식기도를 넉넉히 감사함으로 할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전도서의 기자가 가르쳐주는 진리는
참 인생의 걸음을 다시 살펴보게 된답니다
젊은이들은 영원히 젊음이 있을 것 같지만
신속히 세월을 흘러가고
한세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가 땅을 차지하지만
땅은 영원히 있습니다.
해는 뜨고 해는 져서 자기 처소로 곧 자기가 떴던 곳으로
속히 돌아갑니다
바람은 남쪽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돌이키면
계속해서 빙빙 돌다가 자기의 순환 회로에 따라 되돌아가고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여전히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 것을 보세요
강들은 자기들이 나온 것으로 되돌아갑니다
오늘 유행이라고 유행의 첨단을 찾는 인생들이여
그 유행인 이미 있던 것입니다
그것이 후에 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한답니다
인생이 짧기에 즐기라고요? 그런 사람이 인생을 안다고요?
모든 것을 가장 많이 즐긴 솔로몬왕이
헛되고 헛되도다 왜 그렇게 탄식할까요?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 인생의 걸음 걸음이 기록된답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된 바람 잡는 것을 찾아간다면
한숨 지며 헛되고 헛되며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인생에서 눈물지을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역경을 당하는 날에는 깊이 생각하며 더욱 겸손과 성숙함을 배우고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는 인생이 슬기롭습니다
어느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슬기로운 충성된 삶이었다고
살수 있게 하소서
오늘 가진 시간 주신 모든 달란트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소서
이런 삶을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