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온 편지”
참 많이 사랑하는 울 엄마께,
교화 프로그램을 통하여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둔 아이들에 대한 모습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에 관한 생활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끔씩, “동행”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불우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게 되고요.
그런 모습들을 대할 때면 참으로 많은 안타까움과 함께 마음 한 켠이 아려오곤 합니다. 주님 안에서 참 과분한 사랑을 누렸으면서도, 그런 중에 제 안에 담겨 있던 어릴 적의 아픔들이 치유되었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특히나 어린이 날이 가까이 오고 TV 에서 불우한 아이들이 돌보아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면 더욱 진한 안타까움을 갖게 됩니다.
말씀 드렸듯이, 제가 8 살인가 9 살 때 서울의 대공원에 버려진 적이 있었습니다. 계모님이 기다리라고 하여서 계속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에도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고 어릴 적에 저도 모르게 형성되었던 당혹감과 긴장감, 두려움들은 저도 모르게 나타나곤 하여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제 안에 숨어 있어서 때로는 저의 영적 성장에 지장이 되기도 하며 저의 인간적인 본성을 드러내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 기억들을 통하여 제가 살아가는 사랑의 삶에 가장 유익이 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하여도 그 아이들 안에 담긴 진짜 아픔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온전히 알 수 없을 테니까요.
엄마의 기도의 능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저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로는 한번도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육신으로 죄의 법을 따라가기도 하였지만 제 자신이 항상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지냈으니까요.
사랑하는 엄마,
바깥 사람들은 감옥살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매우 나쁘고 난폭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사는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 단순하고 때론 순박하게 느껴지는 저들에게 금 수저는 아니어도 온전한 수저를 물려줄 사랑이 함께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어 달 전에 저희 노역장에서 일을 하게 된 23 살의 아직은 청소년의 티가 잔뜩 느껴지는 아들 같은 형제가 늘 고무신만 신고 다니기에 그 형제에게 고급 운동화 한켤레를 사주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상태에서 개인적인 상담은 나누지 못한 중이었는데 그 형제의 어려움을 이제서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시간에 그 형제가 여전히 고무신을 신고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불러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다음주에 삼촌(디모데)와 함께 기독교 집회 갈 때에 신고 나서 신으려구요….” 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
엄마는 제게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는것에 대하여 말씀했지요. 저는 여전히 새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제 육신이 연약하여 흡족하지 못하였지만 제 안에는 엄마를 통하여 주님께서 부어주시고 본을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이 여전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저의 연약함으로 조세형에 대한 것 또 쓰러져간 믿음의 선배들과 인간적인 욕심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안고 있지만, 그래서 누구를 섬긴다는 사실이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욕되게 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엄마가 담아주신 사랑은 여전히 사랑으로 살게 합니다.
제가 엄마께 배운 것 중에 하나가 필요를 요구하거나 구걸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며 저의 필요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 풍성하심으로 채워 주신다는 사실이니까요. 또한 지금까지 누렸고 경험한 일인걸요. 사실, 저는 돈에 대한 절실 함에서는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4 년여의 세월 동안 저도 모르게 익숙해진 유익이며 은혜라고 여겨집니다. 필요할 때마다 채워 주셨고 또는 먼저 채워짐으로 필요함이 생기고……어쩌면 그 훈련으로 누린 풍성함으로 이러한 자신감이 생겼겠지요. 하지만 정말 깨닫기는 물질이 부족할 때도 마음으로 섬기는 그래서 행위로 나타나는 사랑의 풍성함이 정말 하늘아버지께서 제게 부어주신 사랑의 풍성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돈의 노예로 왜 그리도 비틀거리며 살았던가 라는 어리석음도 깨달았고요.
엄마께 마음을 담으면서 깨달아지는 게 있습니다. 앞 글에, 금 수저, 온전한 수저에 대해 말씀 드렸던 것, 세상적으로 금 수저를 물려 받지 못했으면 어떻게 온전한 수저를 물려 받지 못하면 뭐 어떻겠습니까? 제 옆의 동료들에게 천국의 수저를 선물하고 생명의 양식을 함께 먹으면 되는 것을……세상의 그 어떤 금은보화의 유산보다 값진 믿음과 사랑의 유산이면 복된 것을……
사랑하는 엄마, 마음은 선을 원하지만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아들이어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랑, 이 은혜를 알면서도 저는 여전히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을 해결할 분도 오직 예수님인데 자꾸만 제가 해결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이모님과 장로님과 집사님과 함께 이겨보려고 엄마를 만나려 합니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으며 연약한 아들이어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엄마가 계심이 제게, 하늘 아버지의 가장 큰 풍성한 축복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렸다가 지우고 또 다시 그리게 되는 스케치의 과정이 끝나면 우리 주님께서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색칠하여 주실 것을 믿고서 또 다시 믿음과 사랑의 밑그림을 열심히 그리겠다는 말씀을 드릴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엄마의 초서에 마련된 기도의 밀실에서 엄마가 드린 신앙의 기도를 따라 드릴 수 있는 그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강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