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세례자 김영훈전도사님”
홀리네이션스 선교회가 2000 년도에 시작을 해서 저희 남편이 차로 태우고 다녔던 김영훈전도사님은 유일하게 남편이 차로 모셨던(?) ^-^ 귀한 영혼입니다. 처음 중국 조선족반을 남편이 맡아서 박만봉형제와 둘을 공장으로 태우러 가고 태워다 주곤 하였습니다. 당시 김전도사님은 삼십대 후반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가 그렇게 한국으로 와서 선교회로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성품이 신실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새벽 6 시 성경공부를 시작하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주일 예배만으로 불충분하기에 공장에서 점심 시간은 너무나 짧고 서둘러야 하고 밤에는 야근 근무도 수시로 있기에 새벽 성경공부를 나하고 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잘 자라고 한국에서 연수생 시간이 끝나서 다시 신학생으로 오기로 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지금이 오기까지 몇 번의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선택은 연수생으로 오면 보통 불법체류자로 남아버리는데 내가 그리스도인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권면에 결정은 본인이 선택에 달려있는데 그렇게 선택을 했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그 선택보다 더 힘든 선택이었습니다. 막상 중국으로 돌아가서 학생 비자를 받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걸렸고 까다로웠습니다. 그 동안 어린 아들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가야 하는 가장으로서 그곳에서 직업을 갖고 일하게 되어서 비자가 나왔을 때 과연 신학을 공부하며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갈등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전도사님이 밤에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을 통하여 “위의 것”을 찾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하나님의 사람의 선택이었습니다.
세 번째 선택은 방학 때 외국인 신학생들에게 일년에 한 달씩 방학 때 집을 보내주고 가족들과 같이 보내면서 전도를 하도록 했습니다. 한데 한번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춘기의 방황으로 집을 나갔습니다. 한동안 방황을 해서 전도사님은 마음이 많이 상해서 내게 메일을 보내어 “우리 집은 망해 가고 있습니다”라는 탄식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직 주님께 맡기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 아들은 그 후 방황을 끝냈고 대학까지 잘 졸업했고 지금은 중국에 은행에서 근무를 잘 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으로 자라났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을 때 전도사님은 신학교에서 한국 목사님들이 중국인들을 위해서 강의 할 때 통역을 담당하고 문서 번역과 성도교회 중국인들을 위한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세가 일 년치씩 내고 비싸서 교회를 건축하도록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 때로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그럴때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걸어가는 세상적인 것을 택할지 아니면 위의 것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데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날이 곧 오게 되어 있습니다.
갈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