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의 행복한 이야기들
o남윈에서 찾아온 캄보디아 형제들
지난 주일 예배 때 예배시간보다 상당이 늦은 시간에 외국인들이 세 명이 들어왔습니다. 새신자 환영시간에 나와서 각자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들 세명은 전라남도 끝 남원에서 온 캄보디아 형제들이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리더인 하이소밧은 그들 사이에 입 소문이 많이 나서 각자 한국인하고 서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은 일들이 생기면 너도 나도 하이소밧에게 전화를 해서 통역해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곤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번에도 한국에 온지 한 달도 채 안되어서 몸이 심하게 아프다고 밤중에 공장에서 쫓겨나서 오갈 데 없고 심한 염증으로 다리를 속히 수술해야 하는 캄보디아 형제 잔타의 이야기도 소문이 퍼져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행복동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그런 데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 먼 곳에서 버스를 타고 마지막에는 택시를 타고 찾아온 것입니다.
잔타는 현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한지 한달 이 채 안되었는데 이제 걷는 연습을 하고 있고 한국에 귀국한지 3 개월 안에 다른 곳에 재 취업을 할 수가 있기에 윤권사님과 함께 오늘 고용센터에 가서 구직 신청을 할 예정이라 질병의 문제도 구직의 문제도 잘 해결될 예정입니다.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공장은 주로 고속버스를 타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고 교통이 상당히 불편해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나왔는데 예배시간에 늦게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려면 월요일 하루 일을 못하고 일당을 받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이 보고 싶다” 라고들 하면서 행복동으로 온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의료서비스 하는 곳으로 가서 한명은 치과 서비스하는 곳에서 스켈링을 받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이민희선생님이 치과 진료를 할 때 초등학교 5 학년인 신혜가 집에갔다가 다시 와서 엄마를 도와 진료를 하도록 해서 우리 모두 사랑스러워서 웃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아픈 근육을 전문 맛사지 해 주는 이창희집사님의 맛사지와 다른 친구들은 일반 의료 상담과 약을 두 분의 의사선생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들은 쉼터에서 하룻밤을 자고 캄보디아 음식을 하이소밧을 통해서 대접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하이소밧은 지성과 영성과 겸손한 인격과 섬김의 모든면을 하나님께 선물 받은 학생입니다. 캄보디아에 돌아간 후에도 기대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o이름을 “이규석” 에서”이기쁨”으로 바꾼 이야기
화요일 기도모임이 끝나고 우리는 장애우들이 있는 향유의 집으로 가서 규석씨를 보러 갔습니다. 규석씨는 언어장애와 걸음을 전혀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십 여 년전 부터 은주와 의정이 함께 우리와 교제를 하던 형제입니다. 은주도 “규석이 오빠”라고 부르며 오랜 세월 한 지붕밑에서 지내다가 은주가 임대아파트 당첨이 되어 따로 나가서 살면서 서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규석씨는 향유의 집에서 자신을 서울에 있는다른 장애인센터로 1 년 2 개월 보냈다가 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보고 서울로 찾아오라는 말을 하면서 은주가 보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지금 이곳에서 같이 예배를 드린 후 은주 집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가겠냐고 하니 펼쩍펄쩍 뛰며 좋아하면서 향유의 집에서 장애우들을 도와 주는 분을 부르면서 빨리 옷을 입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앉아 있는 상태로 좋아서 이리 저리로 구르는데 옆에서 볼 때 어디에 부딪칠까 많이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우리 여자끼리만 갔으면 규석씨를 안고 휠체어에 앉히고 하는것을 하기가 힘들어서 문제가 되었을터인데 우리 외국인 학생들, 네팔의 단카, 캄보디아의 하이소밧, 미얀마 숨이 같이 있어서 휠체어를 밀고 안아주고 해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은주는 더욱 행복해 지고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냥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하면거의 언어 장애를 느낄수가 없고 정상인 같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은주를 보자 환한 얼굴에 어쩔줄 모르고 좋아하는 규석씨가 이미 향유의 집에서 자기 이름을 “이 기쁨”으로 바꾼 것을 고백하여 우리는 같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앞뒤 동산에 꽃은 피었고 내 맘속에 웃음꽃 피어있네
높은 하늘에 종달새 우짖고 내 맘속에 기쁜 노래 있네
오 친구여 즐겁게 노래해 오 친구여 줄겁게 노래해
손뼉 치면서 즐겁게 찬양해 손뼉 치면서 즐겁게 노래해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기쁜 만남을 마치고 함께 다과를 먹고 다시 향유의 집으로 규석씨를 데려다 주고 “이 기쁨”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쁘게 돌아왔습니다.
“높은 비탈길에 폭설이 다 녹아버려서 교도소를 무사히 잘 다녀온 이야기
원래 일주일전에 항상 셋째주 수요일에 전남 장훙과 광주교도소에 디모데와 요한이를 보러갈 애정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영하 20 도가 되는 한파가 몰려오고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 장흥과 광주교도소 두군 데 다 산 밑에 교도소가 있어서 그곳을 가려면 왕복 1000 km 인 것도 더군다나 당일로 달려갔다 오는 것도 문제인데 눈이 오면 그 산길을 어찌 갈수 있는지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니 화요일 아침에는 일산에도 눈발이 열심히 날렸습니다. 이미 한번 면회를 연기시킨 상태이고 교도소 측에서도 특별접견은 윗분까지 결제를 맡아야 하기에 다시 연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기를 놓고 기도했는데 장흥과 광주에 도착해서 보니 양쪽 길가에 밀어놓은 눈높이를 보니 뉴스에 폭설을 보여주는 장면이 실감이 나는 정도였습니다. 남쪽 지방에 그렇게 많은 눈이 쌓인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가는 도중 충청도 지역도 많은 눈이 덮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발걸음을 잘 아시는 우리 주님이 차가 운전해 가는 길은 전혀 눈을 볼수 없게 언제 추웠냐는 듯이 영상의 기온을 주셔서 눈은 완전히 녹아 있어서 기쁘게 교도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들은 디모데는 날마다 더 의젓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며 요한이도 두 눈이 반짝거리며 믿음이 쑥쑥 자라서 얼굴 표정이 한번씩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고 너무나 사랑스런 두 아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위대함과 환경을 이기게 하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가 있어서 우리를 “오 기쁨 주님 주신 것” 찬양을 부르고 달려갔다 달려 올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