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주년 교정의 날
일반인들에게는 “70 주년 교정의 날” 이런 날도 있었나? 하고 전혀 낯설은 날이고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날이 교도소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지난주에 디모데를 장흥교도소에서 요한이를 광주에서 볼 예정이었으나 광주 교도소가 새로 지은곳으로 이전 하는 바람에 면회가 지난주에는 일체 안된다고 통보를 받아서 일주일을 늦추었습니다. 그랬더니 두시 전에 모든 행사를 마치고 교정의 날 행사를 해야 하기에 양쪽 교도소에 일찍 면회를 하던지 아니면 다른 날로 또 바꿀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날로 바꾸기가 쉽지 않기에 오늘 일찍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새벽 6 시에 출발하던 것을 오늘은 모두 5 시 반에 모여서 어둠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먼저 장흥에 갔는데 오늘 만남은 더욱 특별한 것이 어느새 디모데와의 만남이 4 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정말 거듭난 디모데의 얼굴은 교도소 내에서 거주하지만 오늘 우리 모두 하는 말이 얼굴이 빛이 나고 너무나 밝고 성숙한 모습에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낮에 잠시 쉬는 시간에 매일 운동장을 달리기를 해서 체중도 5 kg 이나 줄여서 더욱 단단한 모습으로 최전방의 복음의 기수 다워 보였습니다. 4 년동안 학사고시를 2 년만에 마치고 전기 기술자 자격증을 획득하고 그곳에 지치고 소망이 없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우리의 달려가는 길이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 4 년이면 대학 졸업 하는 시간이기도 하여 오늘은 그동안 특수 장학생 정도의 수준을 잘 감당하였다고 우리 모두 칭찬을 했습니다..
그동안 성경을 16 독째 읽고 있고 신약성경의 서신서 삼분지 이 정도를 암송하였고 또 하나의 열매를 다른 교도소에 만들어서 동생을 제게 소개 해주었는데 바로 광주 교도소의 요한입니다.
정말 먼거리를 하루에 달려갔다 오지만 사랑스런 얼굴을 보기에 우리 일행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우리 일행은 디모데와 요한이를 보듬어주고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이 찬양을 들려주었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것 고마워요 그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요한이에게 이 찬양에서 또 하나의 열매를 바로 디모데 형이 요한이를 맺어 준 것 아니냐고 하니 수긍을 했습니다. 디모데는 광주에서 이년 있고 그리고 순천에서 일년 그리고 지금은 장흥에 있는데 광주에 있을 때 바로 요한이에게 새로 복음을 다져주는 역할을 했고 자신이 떠나고 다시 동생이 쳐져 있는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하면서 제게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많이 자랐으니까 동생을 돌봐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라고 했는데 저가 생각할 때 디모데를 혼자 다시 두면 안될 것 같아서 계속 한 가족으로 지내는데 디모데는 포기하지 않고 제게 부탁을 해서 제게는 디모데와 요한이 두명의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복음으로 그곳에서 가장 세상에서 힘든 영혼들, 고아와 같이 내버려진 영혼들에게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우리의 먼길을 하루에 달려갔다 오더라도 기쁨으로 오갈수 있는 마음을 늘 주고 있습니다.
한편 70 주년 교정의 날에 어떤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현재 한국은 교회는 날마다 문을 닫아가고 교도소는 늘어간다구요. 오늘 새로 지어서 간 광주 교도소의 건물을 보면서도 복음이 더 강력하게 전해져서 교도소는 문을 닫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왕성하여 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조국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요한 웨슬리 한명이 복음을 강력하게 전할 때 영국은 자진해서 술집들이 문을 닫고 복음을 듣고 울며 회개하는 사람들로 한 나라를 복음화 하였었는데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일행은 가장 오지에서 활약을 하는 오지 선교사를 키우는 중요한 이 일을 우리 함께 할수 있는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디모데의 사랑의 섬김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랑하는 엄마, 지난 수요일에는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토요일에 제공되는 김을 형제들이 먹지 않고서 월요일에 가지고 나와 김밥이 먹고 싶다며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저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김밥을 만드는데 제가 만드는것보다 맛이 없다면서….여러가지 김밥 재료들이 필요하여 구매를 신청하느라 수요일에 김밥을 싸게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김밥 맛을 잘 내어주는데 일순위는 오이가 필요하여 오이 무침이 반찬으로 지급되는 수요일에 김밥을 싸게 되었습니다.
소제지를 썰고 참치를 고추장 양념소스와 함께 섞어서 버무리며 오이와 김치들로 알맞게 썰고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일을 거들어 주는 형제가 칭찬을 하는것입니다. ‘형님의 손 맛은 참 좋아요!’ 사랑하는 엄마, 형제의 칭찬을 들으니 더욱 신이나서 김밥을 싸게 되었는데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는 것 있죠?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깝지 않게 모든 것을 내어 줄수 있는 특성이 있다는 말씀이요. 제가 엄마의 칭찬과 격려, 저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 주시는 것이 기쁘고 신이나서 그 무엇도 아깝지 않게 할수 있었지만 비난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며서까지 우리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내어 주신 우리 주님은 어찌 그리 하실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은 모든 것이 오로지 우리를 향하고 위한 참 사랑이 아니셨다면 어찌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구원 사역의 은혜를 누릴수 있었겠나 싶었습니다.
날씨가 전점 추워짐으로 생각나는 형제가 있어서 호두파이 홍양숙 집사님이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을 사용하여 긴팔 티셔츠를 구입해서 그 형제께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께 선물하는것을 보았던지 다음 날, 다른 형제가 제게 ‘저도 티셔츠가 없는데요’하는것입니다. 제가 입던 옷 밖에 없고 교도소의 규정상 허가 되어 있는 만큼의 수량의 옷들을 초과하여 구매하려면 담당자의 허락은 받아야 하는데 저는 이미 허가 수령을 초과한터라 다시금 담당자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 되기 까지는 날짜가 필요하므로 그래도 제가 있고 있던 티셔츠가 입을만하다 여겨져서 ‘이옷이라도 괜찮으면 입으세요’하고 벗어서 세탁하고 탈수를 한 후에 말려서 입으라고 하면서 형제에게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제가 입던 옷을 벗어 주었던 형제가 제가 준것보다 훨씬 좋게 보여지는 티셔츠를 3 개나 가지고 와서 제게 입으라고 주는것입니다. 왠거냐고 의아해 하는 제게 며칠후에 출소하게 되는 분이 입으라고 넉넉하게 챙겨 주었는데 그중에 좋은것으로 골라 왔다며 남 주지 말고 저만 입으라고 하는것입니다.
저만 입으라…형제의 바람은 그대로 되지 않겠지만 형제의 따뜻한 마음은 입게 되어 형제를 볼 때 마음이 절로 따뜻해 질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 제게 있는 것을 나누고서 답례를 받을 때 마다 갖게 되는 감동이 이리도 좋은데 울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기적을 체험한 인생들의 절만 만이라도 주님께 그 감사함과 고마음의 마음을 드렸다면 주님께선 덜 외롭고 덜 가슴아파하지 않으시는 내어줌의 길이셨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울엄마, 예수 사랑의 손맛을 내는 엄마의 아들이 되도록 응원하여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