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기까지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미쳐도 하나님을 위해 미친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가끔 저도 미쳐가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내안에 새로운일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생각과 마음을 변화 시켜놓았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를 '엄마~' 라고 불러
보지 못했습니다. 열아홉에 저를 낳은 엄마는 올해 예순여섯이 되었고 저는 마흔 일곱이 되었습니다.
애기때 열병을 앓아 청력을 잃은 엄마는 평생 청각장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수화 교육을 받지 못해 의사소통이 단순 할 수 밖에 없어 오해를 많이 했던 엄마는 아버지와 늘 싸웠고 중간에서 중재 하느라
많이 지쳐 있던 저는 스물아홉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도망치듯이 그렇게 친정을 떠나 왔습니다.
이제는 엄마의 넋두리를 그만 들어도 되겠구나 싶어 가벼워진 마음도 잠시..
아무 생각없이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한 저의 결혼생활은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고통의 나날 이었습니다.
분가해서 살자는 저는
장남으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마음이 고통스러우니 몸도 병이 들어 아이를 출산하고 18개월 후에 중환자실에서 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식도정맥 파열로 인한 과다출혈 이었습니다.
코와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는 온몸과 바닥을 피바다고 만들어 양동이로 피를 퍼담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를 살리려는 의료진들의 바쁜 손놀림도 정신을 잃지 말라는 의사분의 소리도 점점 제 눈과 귀에서
멀어지면서 그렇게 저는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후 의식이 돌아왔을땐
온 몸에 수십개의 관이 꽂혀 있었고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어 고통이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피를 쏟으셨겠구나...
아직 세상에 할일 있었던건지
아직 천국갈 믿음이 부족 했었던건지
저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 났습니다.
다행이도 간경화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일상을 살수있다고 했습니다.
후에 내시경으로 파열된 정맥두곳중 시술 하지못하고 중단한 혈관 한곳은 불로 지져 놓은것처럼 절로 아물어져 있었습니다.
담당의사분은 그저 신의 도우심이라 짧게 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부터 저를 새롭게 만들어 가셨습니다.
여전히 불편한 시집살이는 계속 되었고 큰수술 후유증으로 육아와 살림은 저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었고 매사에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도 넘어야 할 큰 산이었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혼자 살걸...'
하루에도 수십번 이혼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죽겠구나 싶은때에..섬기던 교회 부흥집회를 통해 성령의 큰 은혜를 체험한후
바라보는 눈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주변 환경은 그대로이지만 내안에 말로 표현할수 없는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불평하며 살았던지 몇달을 새벽기도 때마다 '감사합니다 ' 라는 말만 고백 했었습니다.
올해로 결혼한지 17년이 되었습니다.
2년전에 시어머님 소천하시고 믿음 없으시던 시아버님은 병상에서 주님을 영접하시고 올해 3월에
소천하셨습니다.
끝까지 시부모님과 함께 할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저에겐 가장 넘기 힘든 큰 산이었습니다.
오늘도 전..남편과 함께 시작한 작은 호두파이 가게로 출근하며 덤으로 15년을 살아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겠지요..
때론 숨이 턱 막힐만큼 힘들때도 있겠지요..
이제는 걱정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불평도 하지 않을 겁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이 토닥거리며 함께 하실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인도 하시는대로 그렇게 딱 하루만 살려고 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아멘
믿음의 승리를 보여주는 홍양숙집사님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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