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2)
기도에 관한 수 많은 책을 보아도 실지로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기도를 응답하시고 정확하신지를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 고아를 위해서 사역을 한 조지뮬러는 고야들을 만명이나 사역기간동안 먹이면서도 200 명이 넘는 선교사를 후원했습니다. 왜 그의 기도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응답을 받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종교인(교인)과 신앙인(신자)의 차이가 그런 응답의 결과로 나올것으로 믿습니다.
종교인(교인)과 신앙인(신자)의 차이
o종교인(교인)
하나님의 이름은 알지만 하나님의 실체를 모른다. 전혀 하나님의 실체와 동행하는 기쁨을 모른다.
예배와 삶은 일치하지 않고 따로 따로 산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다.
자신의 이름이나 명예를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영광 돌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최우선이고 전부가 아니고 세상적인 삶 속에 하나님은 일부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를 할 때 자신이 필요한 것을 받는 기도를 하고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반복을 하기에 참된 기도의 능력을 전혀 모른다.
o신앙인(신자)
하나님의 이름뿐 아니라 하나님과 삶 속에서 늘 동행하는 임재 속에 산다. 늘 인도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예배와 삶은 일치하고 삶이 예배다
경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린다
하나님이 최우선이고 전심으로 온 맘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참된 신자는 기도를 할 때 자신의 필요를 찾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기도를 하기에 언제나 넘치는 응답을 보여줄 수가 있다.
한번은 병원에 암으로 입원해 있는 분에게 병원비를 지원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온 가족이 고통을 받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마음으로 얼마를 지원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흔드시는데 그때는 싱가폴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손길을 흔드셨습니다. 다달이 최선을 다해서 후원을 하는데 그날 보통때보다 두배를 보냈습니다. 물론 암환자를 도와야겠다는 말을 전혀 꺼내본적이 없고 오직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만이 그 마음을 아시는 상황에서 즉시로 보내 주신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니 오히려 “하나님께 드릴수 있어서 감사해요”라고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기쁘게 퀵 서비스를 달려가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분이 병원에 입원하셨을때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요르단과 미국에서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날 저와 요르단에서 오신 선교사님과 미국에서 아들 결혼식을 시키기 위해서 오신 집사님과 셋이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오신분은 요르단에서 온 선교사님과 저가 만나고 조금 늦게 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가기전에 요르단에서 오신 선교사님께 후원금을 준비해 가지고 갔는데 우리는 둘이 동시에 봉투를 꺼냈는데 서로 같은 금액을 가지고 왔습니다. 잠시후에 미국에서 오신 처음 만나는 집사님을 만났는데 이분은 헌금 봉투를 두개 준비해서 우리에게 각각 전달해 주셨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두 사람다 선교를 하는 사람으로 상대방을 도우려고 했는데 오히려 미국에서 오신 집사님이 헌금을 주셨고 그 헌금은 다른 암 환자에게 전달이 된것입니다. 전액을 다 전달했기에 우리는 이때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 순서를 말씀을 통해서 묵상해 보시면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받는것에는 귀가 쫑깃한데 반드시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데로 순서를 할 때 이런 기적은 상식처럼 일어날것입니다.
요일3:21-24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