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람들은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므로 자녀들은 불안하고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거친 성격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줄 안다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인줄 알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세상에게 가장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모델을 간증 해 주신 원미라집사님의 글을 나눕니다.
사랑을 가르쳐준 엄마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내게 있어 어머니는 특별할 정도로 존경스럽고 사랑하는, 그리고 닮고 싶은 대상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1950년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자 살고 계시던 평양 근처의 집에서 이남으로 피난을 오셨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배우는 과목들이 달라서 처음에는 무척 어려움을 겪으셨고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공부를 한 끝에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는데 경제적인 책임을 다 맡게 되었다. 아버지의 계속적인 사업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자식들을 공부시키려니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교과서나 참고서등을 쓰시면서 온종일 일하는 생활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도시락을 하루에 6개씩 싸주시고(세 자녀에게 두개씩)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늘 수고를 하셨다. 퇴근 후에는 시장에 가셔서 찬거리를 사가지고 만원버스를 타고 오신 어머니의 양손은 무거운 식재료들이 들려있고 얼굴은 더위에 빨갛게 익으신 모습이 떠오른다. 피곤하셨을 터이지만 정성껏 음식을 만드셨고 소홀하신 적이 없으신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거나 잔치나 선물을 잘 해주셨다. 어머니가 고생하면서 돈을 버시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빠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시다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곤 하셨다. 50년 이상 이런 생활을 하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아니면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를 극진히 돌보아드렸는데 자주 병치레를 하시는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영양이 부족하실까봐 외출을 삼가시면서 아버지를 돌보셨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복막염으로 입원하셨을 때의 일이다. 병간호하시던 어머니께서 집에 무엇을 가지러 오셨다가 떨어지셔서 누웠다 일어나시는데 15분 이상씩 되셨을 때 퇴원하신 아버지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일어나시게 되면 음식을 다 하기까지 앉거나 눕지를 않으셨다. 사랑을 하시는 어머니. 사랑을 위해 삶을 드리신 어머니는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존경대상이다.
이런 어머니와 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였다. 어머니가 직장을 나가실 때 난 이야기하고 싶은 글을 편지로 써서 어머니의 핸드백에 넣어드렸고 어머니는 답장을 써서 가지고 오셨다. 언제나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셨고 칭찬을 해 주셨다. 해마다 나의 생일을 꼭 신경 써 주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팥시루 떡을 광주리 가득 만들어주셨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으며 내게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우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일하실 때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드렸고 둘이서 깔깔거리며 웃었던 일들이 꽤 많이 있다. 미국에서 5년 동안 지내는 동안에도 어머니와 나는 이메일로 자주 편지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2012년에 내가 갑자기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지내는 생활을 하였다. 어머니의 중병이 당시에도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몰랐고 몸이 아프신 중에도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느라 새벽마다 일어나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어머니의 몸이 계속적으로 이상하게 여겨져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생명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어머니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하였다. 어머니의 암은 빨리 진전되는 것으로서 처음 병원에 입원하실 때만 해도 곱고 건강한 모습의 어머니가 이것저것 치료를 하시면서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셨다. 집에서 지내시는 날에는 1-2미터의 거리도 움직이기 힘들어 하셨는데 그럼에도 우리에게 힘들다거나 짜증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우리 식구들은 저녁 식사 후 같이 성경을 읽고 찬양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하였고 맛있는 음식을 갖가지 만들어서 드리고자 하였다. 입원하지 않고 집에 계실 때는 한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새벽에 부엌정리를 돕거나 음식 만드는 우리를 도우려고 기다시피하며 부엌으로 나오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나는 매일 퇴근 후에 어머니에게 찾아가 얼굴을 실컷 쳐다보았고 또 성경을 읽어드리거나 기도해 드리거나 하였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밤, 통증으로 눈을 감고 계시는 어머니께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인사를 하려고 엄마를 쳐다보며 “엄마, 사랑해..”했고 엄마 역시 “나두...” 하셨다. 이 대화가 엄마와 마지막 대화일 줄이야....돌아가시는 날 식구들은 어머니 옆에서 끝없이 찬양을 불러드렸다. 아무 말씀 없으시고 눈을 감고 있으신 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우리는 그 귀에 대고 작별인사를 드렸다. 장례식 날에는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린 잔치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돌아보면 어머니가 20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적이 있다. 동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하여 아버지가 내게 전화를 걸어서 소식을 전하셨다. 전화를 끊자마자 난 주님께 깊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는데 주님께서는 할렐루야라는 기도와 평안,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고 약속하신대로 어머니를 돌보아주셨다. 어머니는 큰 병원으로 옮기셨고 그 병원에 어머니가 재직 중이셨던 학교 교사의 남편 되시는 의사분이 마침 그 병원에 근무하는 날이어서 수술을 급히 하였으며 성공적으로 수술이 되어 그 동안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
하나님은 20 년 동안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소중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또 그 기간 동안에 어머니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도 허락해 주셨다. 특히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좋은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도와 사랑을 받게 하셨다.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가 있지만 내게 그토록 아름답고 훌륭한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평안과 행복함을 느낀다.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훌륭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