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서 에서 온 요한의 편지,
권사님, 그동안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권사님께서 보내주신 2 통의 서신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이번에 서신과 함께 권사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 보따리가 너무도 많아, 선물 하나 하나를 풀어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또 다시 되새겨 보느라 며칠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기쁨에 젖어 있다 보니 이렇게 답장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권사님, 저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심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 요한, 마음에 드냐고 물으셨죠? 저 이 이름을 보자 마자 온 몸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감동을 받을 때 그런 전율의 X 2 배였습니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이 기쁨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께서 각별히 아끼고 사랑을 하셨던 사도 요한! 권사님께서 저를 “요한”이라 불러 주셨지만 그 이름을 주신 이는 아버지께서 주신 것임을 믿고, 요한이라는 이름이 더욱더 아버지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과 열심을 갖고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권사님은 제게 너무도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두 분의 권사님, 요한이라는 새 이름, 아직은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홀리네이션스를 사랑으로 섬기는 많은 가족들, 한번에 너무도 많은 사랑과 선물이 도착해서 지금 너무도 행복하면서도 표정관리 또한 잘 안되고 있답니다
권사님, 이제는 저를 “요한”이라 자주 불러 주세요 권사님이 제가 사도 요한과 같은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바램 대로, 또 전부터 하셨던 기도의 바램 대로 사도 요한의 삶이 곧 저의 삶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기 위해서 디모데 형처럼 저도 하루 성경을 12 장씩 꼭 읽고(권사님과의 약속) 꾸준하게 성경 말씀 또한 암송을 잊지 않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권사님께서 궁금해 하신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제주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부 제주도 분이시고, 2 남 1 녀 중 둘째로 태어나 제가 3 살 때쯤 서울로 올라와 몇 년을 살고, 다시 성남으로 이사해 제가 이곳 교도소에 오기 전까지는 쭉 성남에서만 살았습니다. 평소 부지런 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여느 가정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았던 저였습니다. 허나 이런 평범한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악재가 한번에 몰려왔고 이로 인한 두 분의 잦은 부부 싸움은 결국 가정에 파탄을 불러왔고 중학교 2 학년, 제가 15 살 때 당시 어머니는 집을 나가시고, 가장인 아버지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시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 하신 채 그렇게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사셨습니다. 당시 두 분의 이혼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셨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했던 외가 친척들의 인도로 나름 열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 왔던 저는 주님의 사랑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한꺼번에 찾아왔던 여러 가지의 악재들. 평온했던 저희 집안은 한 순간 폭력과 분란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 버렸고 어린 삼 남매는 늘 불안에 떨며 하루 하루를 어렵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어머니의 빈 자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당장에 학업은 물론이고,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게 더욱 시급할 때였으니까요. 외가 친척들에게 도움도 요청해 보고 여러 지인들이며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가까운 모든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그들의 차가운 외면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런 능력과 할 수 있는 게 없던 저는 그렇게 눈물로 현실을 받아 들여야만 했고 어느 순간부터 삐뚤어진 마음의 씨앗은 점점 더 네 마음 속에서 커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선한 삶을 떠나 죄의 길을 걷게 되어 사춘기 때의 반항적인 삶은 저의 성품을 점차 나쁘게 변화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권사님, 제가 작년에 어느 사형수에 관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사형수가 마지막 사형 집행 장에서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도 제가 이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뚤어진 마음, 삐뚤어진 시선,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았던 그 대가는 결국 축구가 없는 괴로운 시간으로 이어졌고, 세상적인 불법과 죄악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요. 그 후 이곳에서 수감자의 생활이 되면서도 하루 하루 희망 없이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며, 아무 의미 없이 망연자실하게 살아왔으니까요. 한데 그런 저의 차가운 손을 잡아 주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권사님이 믿음과 사랑으로 낳아주신 디모데 형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번 있는 기독교 집회 때는 꼭 제 손을 이끌어 집회에 참석하게 하셨죠..
디모데 형은 저를 성가대로 이끌어 주셨고 굳어져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부정적이었던 마음이 풀리고 예수님이 제 안에 계셔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던 시간들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 많은 상처를 겪었던 시간들, 이제나 저 제나 늘 저와 함께 하셨던 아버지 하나님,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위로의 아버지 하나님.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사랑에 저는 두말 않고 아버지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어떤 말과 수식이 필요 없이 아버지께 그 동안의 삶에 대한 모든 잘못을 회개했고 그의 계명대로 앞으로의 삶을 살겠다 하였습니다.
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권사님,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이리도 큰 사랑을 또 베풀어주십니다. 두 분의 권사님, 요한이라는 새 이름, 홀리네이션스의 많은 가족들, 매 순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저를 사랑하심을 체험케 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주님, 이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려, 이 모든 기쁨 또한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립니다.
너무도 부족한 게 많은 저의 두서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권사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정말 고마우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긍정적인 마음과 감사로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시 한번 더 약속을 드리면서 늘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