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가 유명한 목사로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을 때 정말 거듭나고 성숙한 신앙의 단계로 들어가서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기에 이전 것이 지나갔고 새것이 된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 안에 들어갔을 때 새로운 피조물을 보게 되는 것은 너무나 경이로운 사실입니다. 한국 초대교회에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 초대 목사이자 일제시대 한국 교회를 대표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가 기독교인이 되기전에 그는 도교에 심취하여 오랜 기간 선도 수행에 전념하여 수시로 몸이 진동하며 옥피리 소리와 총 소리가 들리는 강령 체험을 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도사”로 부렸던 사람이다. 웬만한 시내는 건너 뛰었고 통나무 목침도 한 주먹에 깨부술 정도였다. 제자도 많았다.
1893 년 선교사와 조선인 전도자들이 평양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도쿄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길선주가 이를 배척할 것은 당연했다. 그는 “새 종교를 알아오라” 며 제자 김종섭을 선교사에게 보냈다. 그런데 몇 달 후 김종섭이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와서는 오히려 길선주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닌가? 김종섭은 교회 신문인 (그리스도 신문)과 전도 책자 등을 길선주에게 갖다 주면서 읽어 보라 하였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길선주는 예수교에 대해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바뀐 김종섭의 생활태도를 보고 어쩌면 예수교가 참 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20 년 넘게 신봉해 온 선도를 버리고 새 종교로 옮겨 가기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종섭은 고민하는 길선주에게 기도해 보라고 했다. 길선주는 자신이 섬기고 있던 “삼령신군”에게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예수도가 참 도인지, 거짓 도인지 알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김종섭이 다시 찾아왔다.
“삼령신군에게 기도하니 어땠어요?”
“번민만 날 뿐이요”
“그럼 이번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 보시요.”
“어찌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리요?”
“그러면 아버지란 칭호는 빼고 그저 상제님이라 부르며 그분께 기도해 보시오”
“삼령신군”에서 “상제”로 바꾸어 기도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예수가 참 구주인지 알려주소서” 기도하던 중에 공중에서 “길선주야!” 하는 소리가 세 번 들렸다. 그 순간 길선주는 자신도 모르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를 살려 주소서”하고 외쳤다. 그리고 이어서 방성대곡, 회개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예수교인” 길선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어 많은 영혼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유명한 목사가 되었다.
길선주 목사님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바로 자기가 죄임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어떤 종교도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죄를 말하는 것은 기독교뿐이다. 도적질, 간음, 살인 같은 죄는 거의 모든 민족이 죄로 치부하지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죄임을 주장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처음이었다. 1903 년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를 통해서 죄를 회개하고 고백한데서 발단이 되었다.
1906 년부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친구인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교인들이 계속 모이면서 300~500 명이 매일 모이는 집회로 변했다. 길선주장로님(목사가 되기 전) 당회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이따가 1906 년 가을로 이것이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새벽기도회가 비롯된 시점이다.
길목사님의 회개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도사경회”기간에 일어났다. 1907 년 1 월 2 일부터 약 2 주간 동안 사경회가 진행되었다. 사경회 마지막 날인 15 일 밤 길목사님의 회개하는 모습을 그의 아들 길진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와 몇몇 선교사들은 길씨와 주씨 두 사람을 위해 특별 기도를 했다. 그들은 생활에서 회개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길씨가 일어나 자신은 형제들을 질시했을뿐만 아니라 특히 방위량(W. N. Blair)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음을 회개한다고 하며 보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땅바닥에 굴렀다…...한 교인이 또 일어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음란과 증오, 특히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죄뿐만 아니라 일일이 다 기억할수 없는 온갖 죄를 자복하였다. 그는 기도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온 회중도 따라 울었다.” (길진경)
길선주의 회개는 우리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의 시무 장로였고, 또 장로회 신학교 졸업반으로 6 개월 후면 졸업을 하고 그 해 9 월 목사 안수를 받아 한국인 최초 7 인 목사중 1 인이 되는 분이다. 그런데 그의 회개의 내용이 “형제들을 질시했고, 방위량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는 것이다. 1907 년 대부흥운동 시에 고백된 일반적인 죄는 도적질, 간음 심지어 살인 등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길선주는 그런 원초적인 죄가 아니라 형제를 ‘질시하고 미워한 죄’를 회개했다는 점에서 그분의 위대함을 보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러한 죄는 강력한 회개를 일으킬 만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바늘 끝 같은 작은 죄라도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길선주의 회개는 일종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사경회에 참석했던 다수의 교인들이 그 뒤를 따라 집단적으로 크고 작은 죄를 회개하였다. ‘집단 회개’는 평양 대각성부흥운동의 중심이었다.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일어난 죄 고백 사건은 장대현교회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에 사경회가 열리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여성들은 여러 교회로 각각 나뉘어 사경회로 모였고, 나이 어린 남학생들은 숭실대학 예배 실에서 사경회로 모였다. 성경의 역사 속에 지은 죄를 고백하였다. “The Korea Mission Field”에는 성령의 역사로 집단적으로 고백한 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은 죄가 드러나고’ ‘죄를 자각하고’ ‘죄 짐에 짓눌려서 크게 울고’ ‘죄로 말미암은 심한 괴로움에서 마룻바닥을 치고 옷을 쥐어 뜯으며,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죄 용서를 탄원’하였다. 그리고 나서 죄 용서의 기쁨을 얻고 ‘말씀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 믿음 안에서 평화를 얻게 되었다.
이들이 모여 고백한 죄는 다양하였다. 마음에 담겨 있던 죄(미움, 시기, 질투, 증오심, 양심, 심술, 교만), 밖으로 드러난 악한 행위(거짓말, 눈속임, 사기 행각, 술, 담배, 도박, 마약), 신앙인으로 삼가야 할 직업(주막집),과 첩살이, 형사처분을 받을 죄(절도, 강도, 간통, 방화, 살인)까지 낱낱이 고백하여서 “마치 지옥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 으로 비유되었다.
이러한 죄가 토설 되는 회개의 열매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 첫째는 치유사건이었다. 죄로 인해 병들어 있던 인간의 내면이 그 죄를 고백하면서 밖으로 토해내자 그 영혼이 정화되고 전인적으로 치유되었다. 둘째는, 죄의 고백으로 삶이 변화되는 첫 걸음을 내딛게 해 주었다. 부정직한 사람에서 정직한 삶으로 돌아선 것이다. 예를 들어 훔친 돈과 물건을 돌려주는 등 죄의 고백이 이렇게 윤리성을 새롭게 하였다. 셋째는 죄의 고백은 이제까지 미워하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서로가 먼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화해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관계성의 회복이며, 또한 회개의 사회적 차원이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는 중생과 개인의 변화, 윤리의식에 대한 각성, 사회적은 화해를 수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