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윤리의식
어제 필리핀에 알렉스가 간증을 하여 다시금 우리 나라의 역사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은 우리 나라 보다 더 GNP 가 낮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6.25 때 우리를 돕기 위해서 참전 병사를 보내주었던 나라였습니다. 필리핀에서 국립대학을 나와서 한국에 노동자로 왔으면서 그의 고백이 우리는 항상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하는 직종에 그들이 나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렉스는 4D(더럽고, 위험하고, 힘들고, 죽을 지경이고)라고 하나를 덧붙혔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바뀐 역사의 비밀이 어디 있었을까? 생각해 보고 유명한 윌리암 케리가 복음을 들고간 인도등 여러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간 여러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짧은 시간에 복음을 퍼트리고 기독교 정신으로 역사를 바꾸게 된 비밀을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책을(이덕주 저) 읽으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회개와 양심전”
세례요한도 그러했고, 예수님도 그러했다. 공 생애를 시작하며 외친 첫 번째 메시지의 주제는 ‘회개’였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이후 회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의 첫 번째 관문이 되었다. 회개는 중생을 거쳐 성화에 이르는 신앙의 출발점이다. 회개 없이 중생은 이루어 질 수 없고 중생 없는 성화는 위선일 뿐이다.
그런데 참으로 하기 어려운 것이 회개다. 회개의 문턱에 도사리고 있는 자존심과 수치심 때문이다. 체면과 명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큰 장애물이다. 우리 힘으로는 이것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회개 과정에 성령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단 회개의 문턱만 넘으면 평안과 기쁨의 은총이 우리는 반긴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부흥회의 주제가 회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03 년 8 월 원산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이 그러했다.
“목사의 눈물, 교인의 회개”
13 년차 ‘고참’ 선교사 하디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원산을 거점으로 강원도 북부 선교를 담당한 지 3 년이 지났건만 눈에 띄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김화에 있는 지경터 교회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1898 년에 설립된 지경터교회는 강원도에 처음 설립된 교회로 초기에는 교인들이 스스로 예배당 건물을 마련하고 열심히 전도하여 강원 북부 선교의 중요 거점이 되었는데 그가 맡은 후로는 교인들의 신앙 열기도 떨어지고 교인 수도 점차 줄어든 추세였다. 나름 대로 열심히 수고 하였지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실망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이 지경터 교인들에게 있는 것 같았다. 조선인들은 종교적으로 기독교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하디는 선교사직을 그만둘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1903 년 8 월 24 일부터 일주일간 원산에서 여선교사 기도회가 열렸다. 여선교사들은 연장자인 하디에게 성경공부 인도를 부탁하였고 그는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이 왔다. 그 이유가 자신에게 어떤 장애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였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회개를 말했으나 회개의 체험이 없고 성령을 말했으나 체험이 없는 “이론적”신앙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 기도회를 마치고 처음 맞이한 원산교회 주일 예배 설교 때 하디는 토착 교인들 앞에서 진솔한 자세로 자신의 믿음 없었음 과 고집불통이었던것과 교만했음을 자백했다. 교인들은 선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설교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과 오만을 회개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으로….하디의 ‘눈물 설교’가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곧바로 ‘감동’으로 바뀌었고 교인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일 지나 곧바로 원산지방 남감리회 선교부 사경회가 열렸다. 하디가 인도한 사경회는 처음부터 은혜의 바다였다. 사경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회개하였다. 그리고 한 주일 후 원산을 방문한 미국인 부흥운동가 프랜슨의 집회가 열렸다. 여기서도 회개가 터져 나왔다. 유명한 1903 년 원산 부흥 운동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의 불길은 서울과 개성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1907 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원산 부흥운동은 하디의 회개에서 출발했다. 밖에서만 찾던 목회 실패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발견함으로 시작된 회개의 역사였다. 눈물과 회개는 전염성이 강해 눈물은 눈물을 회개는 회개를 유도한다. 목회자의 눈물과 회개는 더욱 그러하다.
“양심전”
초기 부흥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지은 죄를 보상 혹은 배상하기 시작했다. 훔쳤거나 횡령했던 돈이나 물건을 되돌려 주는 운동이 일어났다. 교인끼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갚았다. 평양에서는 교인들이 중국인 상점을 찾아가 수년 전에 훔친 것이라며 상당한 액수를 갚아 중국인을 감동시켰다. 공주에서는 교인들이 훔친 돈과 물건을 돌려 주는데 가까운 곳은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돌려 주었고 멀리 떨어진 곳은 우체국을 통해 소포로 보냈으며,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예배당 제단에 갖다 바쳤다. 그들은 갚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윤숭근 양심전 이야기도 이때 생겼다. 경기도 벽제 출신 윤숭근은 믿기 전 ‘불량배’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예수를 믿은 후엔 전혀 새사람이 되어 각지를 다니며 전도 하였는데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 선교를 자원하여 지경터에서 가까운 김화 새술막(지금의 학사리)를 거점으로 전도하고 있었다. 그도 1903 년 9 월 원산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전에 선교사 몰래 쓴 7 달러를 갚으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는 새술막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시여,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기억나게 하사 해를 입힌 자들에게 사죄하게 하소서” 집에 도착했을 때 20 년 전에 지은 죄가 떠올랐다. 예수 믿기 전 인천에 있던 주전소에 근무할 때 정해진 봉급보다 많은 돈을 받고도 그 돈을 돌려주지 않고 쓴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윤숭근은 그 돈을 갚기로 하고 20 만원을 마련하여 인천 주전소를 찾았으나 문 닫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전고 기능을 관장하고 있던 탁지부(후에 재무부)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돈을 내밀었다. 탁지부 관리는 의아해했다. “대저 나랏돈이라면 누구나 거저 먹으려고 하거늘 예수 교인은 어찌된 일인지 20 년 전에 정부 잘못으로 나간 돈마저 갚으려 하는가? 탁지부에서는 윤숭근이 가져온 이 돈을 ‘양심전’이라 하였고, 탁지부에서 발행한 ‘양심전’영수증은 하디 목사가 기념으로 가져갔다.
이런 배상과 보속 운동으로 인해 교인과 교인 사이, 교회와 사회 사이에 돈독한 신뢰관계가 이루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회개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마음의 회개와 행위의 회개가 그것이다. 마음으로 뉘우친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말로 하는 회개로는 안 된다. 행위로 연결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느슨하고 타락한 모습과는 처음 교회의 시작은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책의 글을 함께 나누며 우리의 모습과 우리가 따라가고 바꾸어야 할 모습을 한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매스컴에 온갖 비리에 교회의 중진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과연 거듭난 그리스도인지를 한번 확인 해 봐야겠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회개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높여주는 결과가 되었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