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이 필때면
장미꽃
장미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색깔에 매료되네
빨간색 핑크색 하얀색
장미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향기에 끌려가네
먼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향기
장미를 만지려면
장미 가시는 특별한 교훈을 전해주네
인생에는 아름다움도 향기로움도 있지만
가시가 찌르듯이
아픈 시간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시간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에
필수 코스라는 것을 알게 되네
2000 년 5 월에 장미꽃이 피고 지고 할 때에 병원에서 자궁암 수술을 받아서 늘 장미꽃을 바라보면 그때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15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인도하심은 너무나 세심하고 놀랍습니다.
그때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전혀 출범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남동공단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 몇 달 다녔는데 그때 한국인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한 외국인이 왜 하필이면 그곳 책임자도 아니고 그냥 봉사자로 갔는데 제게 진지한 상담을 청했습니다. 2000 년 당시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 월급이 많이 올랐는데 그때 그 외국인은 월급이 30 만원이었는데 한국에 오기 전에 멀쩡한 다리를 한국에 와서 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공관절 수술이 절실히 필요하였고 그가 혼자 병원에 가서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로 진단을 받고 수술비수 물었을 때 2000 만원 가량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그는 내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를 안양 샘병원에서 실비로 600 만원에 해 준다고 하였는데 15 년전에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즉시 그 병원비를 한국인도 마련하기 힘든 액수였습니다. 그의 상담은 내가 수술 받기 직전이었고 나는 일년전에 보험하는 분을 전도하기 위해서 들었던 보험에서 540 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60 만원을 헌금을 해서 그의 치료비 600 만원을 감당하게 되었고 내 병원비는 우리 집에서 낼 수 있으니 우리가 지불하였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11 월에 출범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함께 이 군함을 출항하면서 우리는 모든 외국인들의 질병을 우리가 치료해 주는 선교회로 출항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도 함께 동역하는 박윤태장로님이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미 선교를 15 년전부터 외국에서 시작을 하였지만 그때 까지는 선교회라는 조직이 없이 개인이 몇 명하고 시작을 하다가 다국적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작은 2000 년부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전에 홍콩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선교를 할 때도 남편이 후원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지만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처음부터 팀 선교로 시작을 하면서 남편도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주일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자기가 맡은 외국인은 운전을 해서 교회로 태우고 오고 태워다 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차로 모시고 다니던 외국인 노동자가 지금 할빈에서 너무나 멋지게 사역을 하는 김영훈전도사님입니다. 처음 세례자 1 호가 되었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 전에 외국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자녀들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 년 홀리네이션스 선교회가 시작할 때 딸은 대학교 3 학년이었고 얼마 후에 졸업을 맡고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선교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군대를 갔다 오느라고 몇 년 후에 동역자가 되어서 온 가족이 선교에 함께 하는 가족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동역자들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동역을 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행복동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삼세계에서 선교를 열심히 한 선교사님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무슬림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고심 분투하면서 늘 굶주린 그들에게 닭죽을 준다고 접시를 가지고 오라고 광고를 하니 3000 명이 줄을 섰다는 것입니다. 접시를 가지고 오라고 광고를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솥 단지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다라 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중에는 닭죽을 한 그릇 타가지고 얼른 집으로 갔다 놓고 또 줄을 서고 하는데 그렇게 한끼를 일주일에 한번 주는데 15 만원인데 그 돈이 선교비가 제대로 충당이 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어디일까 생각하고 미국으로 향해서 선교 보고를 하고 한 달을 다닐 때 차비는 1000 달라가 들었는데 한달 동안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선교 사진을 보여주며 선교보고를 했을 때 400 달러가 걷히더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나중에 한곳에서 2500 만원만 걷힌 것을 간증을 하는데 우리는 여러 나라를 지원하기에 한 달에 그 이상 필요할 때도 많습니다.
그 간증을 보면서 한 나라가 선교를 하는데 선교비가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 선교회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 맡은 외국인 중에 자국의 선교사로 돌아가서 여러 나라를 지원하는 액수는 년간 수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교보고를 딱 한 분께만 하면 다른 교회나 누구에게 할 필요가 전혀 없이 선교를 계속 하고 지내온 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이 중요한 사역을 위하여 우리 2 대 3 대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시122: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행복동 사람들은 열방을 기억하며 요즈음 계속 우리 자녀 또 자녀의 자녀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라봅니다. 오늘 아침에도 며느리하고 같이 성경공부를 스카이프로 하면서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자녀들은 성장하여 돈을 버는 이유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것이라고 시122:9 절을 손자 둘에게도 잘 암송시키라고 했더니 큰 종이에 그 성경구절을 쓴 것을 들어서 보여 주어서 둘이 웃었습니다.
오늘 이 간증을 최근에 암 수술을 받고 다시 재기를 해야 하는 몇 분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장미꽃 가시는 인생에서 결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고통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삶을 더 값진 삶으로 방향을 전환시킨다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