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의 사람들
홀리네이션스에서 공부한 학생중에서 러시아에서 사역하는 올가전도사님은 다달이 지원하는 우리 사역비를 이달에는 전액을 다 네팔에 도와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25 명중에 다섯 명은 조선족인데 할빈에 김영훈전도사님, 최화전도사님, 그리고 김현길목사님 부부, 이곳에서 간사로 일하는 박정화전도사님인데 한결같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최화전도사님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결혼식까지 시켜 주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사역비를 받지 않고 중국에서 사역을 하겠다고 선포한 후 사역비를 받지 않는데 네팔에 소식을 듣고 50 만원을 보내왔습니다. 정말 행복동의 사람들답습니다.
김현길 목사님 사역은 연길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내 이봉선전도사님하고 같이 이곳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돌아간 지 이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길에는 어느 날 인가부터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한국에 나와서 돈을 벌러 너도 나도 나오다 보니 아이들은 부모가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된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졌고 게다가 한국에 가서 각자 일을 하면서 살다 보니 이혼 한 가정이 너무나 많아져서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의 문제가 큰 이슈로 다가왔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부터 이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싶다고 김목사님의 비전을 들었는데 지금 두 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가 키우고 보살피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둘 다 남자 아이들인데 열살 먹은 아이는 엄마의 얼굴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너무나 상처를 받아서 처음에는 여자들을 너무나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일년 반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봉선전도사님하고도 같이 잠도 자고 상처가 치유되어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심한 상처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므로 언어 장애가 심해서 말을 제대로 못하다가 지금은 치유가 되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 둘은 김현길 목사님을 “큰 아빠”라고 부르면서 지금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데 전화를 하면 “큰 아빠 빨리 와요”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족들을 전도하여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같이 식사를 하고 이 어린이 둘은 한 가족이 되어 돌보고 있는데 현재 연길에는 더 가난하고 힘들 때도 이혼을 모르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너도 나도 돈을 벌러 가면서 이런 기가 막힌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한국에 데리고 나와서 보통 부모들이 공장이나 식당 이런 곳에서 일을 하기에 전혀 학교 보내고 할 상황이 못되다 보니 정말 중요한 가정이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천국은 어떻게 생겼어요?” 라고 질문을 하면 이동원 목사님이 쓰신 책에는 이렇게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가정 같은 곳이야” 어느 날 인가부터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인륜이 없어지는 가정이 여기 저기 보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을 보여 주여야 할 부모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김현길 목사님 이봉선 전도사님이 더 지경을 넓혀서 상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들을 더욱 많이 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