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라집사님의 가족사”
저희 친정아버지는 84세 연세로 작년 2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지방 소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유교적인 집안에 12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9살 때부터 가족 중 유일하게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했고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6.25를
참전하였고 청년의 때에 이념갈등을 겪었던 불행하고 어려웠던 한국 역사를 살아오신 세대입니다.
또 결혼 후에는 가정에서 병약했던 아내 역할까지 대신하시며 몇 십 년을 살아오셨습니다. 아침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와 자녀들을 깨우시고 딸 세 명과 아들 한 명이었던 우리 자녀들을 머리 빗겨 등교준비 시키시고 출근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어찌 딸들의
머리를 빗겨 주셨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세탁도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빨래와 다림질까지 모든
살림을 하셨으니 그 헌신을 어찌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회사를 다니셨기에 그 시대에 다른 가정에 비해 어려운 형편도 아니었는데 자녀들 풍성히 먹이고 많이 공부시키신다고 한때는 마당 한 켠에 가게를 만들어 장사를 하시기도 하고 연탄배달도 하셨습니다. 요즘 말로 Two job도 아닌 Three job 을 하셨고 퇴근 후 가게에 앉아 수면이 부족해 조시던 기억도 납니다.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늘 책과 신문을 보고 계셨고 또 운동회 같은 학생행사도 빠짐없이 엄마를 대신해 오셨는데 그 시대에 아버지가 학교를 드나드는 일은 아주 드문 일 이였습니다. 참으로 자식 사랑이 끔찍한 아버지였습니다.
봄이면 마당에 꽃씨를 심고 가꾸고 가을에는 씨앗들을 종류별로 봉투에 모아두고 내년을 준비하는 일들도 꼭 자녀들과 함께 하시고 마당에 앵두나무, 석류나무 등을 심으셔서 우리에게 따먹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가게를 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퇴근 길에 늘 맛있는 간식과 과일이 아버지 손에 들려져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을 한 후에도 자주 자녀들을 방문해 냉장고 안에 과일과 간식을 채워 넣어주시고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말리지 말라 하시고 사위 와이셔츠까지 다림질해주셨습니다.
제가 중3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직장을 퇴사하시고 시작한 사업도 잘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지인 사업보증을 섰다가 살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겨우 아버지가 돈을 융통해 가족 모두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자 아버지는 오십이 훨씬 넘으신 나이에 노동일까지 마다 않으시며 자녀들과 가정을 지키셨고
힘들거나 어렵다 보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도 없이 어찌 그리 힘든 시간을 견디셨을까 생각하면
나이를 들어가는 지금에야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 후에도 재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춘기 자녀들 상처받을까 봐 포기하시고 평생을 혼자 살아오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가 49 세 엄마가 42 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만약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다면 우리 집의 가족사는 전혀 달라졌을것이라고 자녀들 모두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신 아버지께 표현할 감사의 언어가 없을 정도입니다. 소천 하시기 전까지도 자녀들을 위해 텃밭을 가꾸시고 쓰러지시는 전날도 자녀들 김장배추 모종을 심으셨습니다.
자녀들 결혼 후에도 사위들 며느리, 손주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사랑해주셔서 우리 가족은
모두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겨 하고 좋아했습니다.
처음 사위들은 아버지가 딸들을 너무 귀히 여겨 좀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는데
다들 오십 대가 된 지금은 장인을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의 무게 때문인지 잠시 믿음생활을 떠나있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최선을 다한 아버지 인생에 회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힘든 병원치료 가운데 소 천하시기 몇 일전에 꿈속에 하나님께서 찾아주셨다며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장례와
유언을 남기시고 멀리 있는 자녀를 다 부르셔서 병원에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틀을 아버지 권속
하에 있는 모든 자녀들, 증손녀까지 함께 하시고 찬양과 예배가운데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으시고 호흡을 거두셨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평탄하지만 않은 인생의 길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 이런 아버지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지금도 천국에서 응원하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리 자녀들은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아버지도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으셨지만 저희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에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사랑과 감사와 존경과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겨있는 단어입니다. 저희에게 이런 아버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