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소식
정확하게 삼 년 전에, 우리 는 네팔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갔습니다. 슈랜드라 목사님은 이곳에서 6 년을 공부하였고 메뉴카 사모님은 상담 학을 공부하여 부부가 우리 선교회 후원으로 공부한 아주 신실하게 목회를 잘하고 있는 사랑하는 목사님 부부입니다. 우리가 1 억을 드려서 교회 건물 하나를 세웠고 그 후 슬럼가에 교회를 두개 슈랜드라 목사님은 개척을 했습니다. 지금 무서운 지진이 네팔을 휩쓸어가서 수를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고 건물들은 무너졌습니다. 처음에는 전화가 불통이라 우리는 소식조차 알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교회 건물은 다시 세우면 되지만 그렇게 헌신되고 성실한 인물을 어디서 세워서 네팔에 복음을 전하며 지진에 너무나 놀라버린 사람들을 정직하게 도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새벽에 슈랜드라 목사님하고 통화가 되면서 저와 남편은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피해는 네팔 임마누엘 교회 교인 세명이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건물은 약간만 파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삼 년 전에 네팔을 다녀와서 쓴 글을 다시 읽으며 그때를 회상을 했습니다.
“우선 네팔에 갔다가 너무나 많은 선물을 받아서 그 선물부터 나누고 싶습니다. 네팔 임마누엘 교회는 약 일 년 전에 세워 그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어서 그 선물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팔 임마누엘교회는 세를 얻어서 우선 시작을 하였는데 몇 십 명의 교인들로 꽉 찼습니다. 교회는 방 하나는 본 예배 실로 다른 방 하나는 주일학교로 다른 방 하나는 쉼터로 사용하여 모두 다섯 명의 고등학생을 공부를 시키고 있고 학비를 대 주고 집이 지방인 경우에 그곳에서 묵도록 하였습니다. 두 부부를 이곳에서 결혼식을 시켜 준데로 그들도 이미 한 쌍을 결혼식을 시켜 주었습니다. 오전 11 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아침 일찍부터 모여드는 교인들을 아침부터 점심까지 밥을 해 주고 함께 두 시간 반 이상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또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예배에 함께 참석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함께 새로 지을 교회 부지를 구매한 것을 보러 갔습니다. 그 부지는 네팔에 새로운 택지의 좋은 장소에 여호와 이레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설사 돈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사람을 키워 놓지 않으면 어떤 일도 그 나라에서 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의 군사로써 준비된 슈랜드라와 메뉴카를 보는 것이 복음의 위대함을 찬양할 수가 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은 거의 다 알지만 네팔 나라에 속해 있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더 익숙한데 네팔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릅니다. 그 나라에서 온 슈랜드리를 통하여 자세히 네팔의 정세를 듣게 되었습니다. 원래 우리 선교회 초청 학생이 아니었는데 처음 슈랜드라가 홀리네이션스에 오게 된 것은 추수감사절에 우리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 신학생들을 초청하여 함께 축제를 할 때 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같이 교제를 할때 마다 슈랜드라는 금요일에 기숙사에서 와서 선교회 쉼터에서 자고 토요일 성경 공부하는데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우리 선교회 후원 학생이 되어 Th.M 과정을 마쳤고 아내 되는 메뉴카는 네팔에 최초의 상담학과를 한국에서 공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슈랜드라는 한국에서 공부한 것이 6 년이 되었고 메뉴카는 이년 반만에 상담학교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작년에 두 사람이 공부를 마치고 이제 일 년여가 지났는데 메뉴카가 자신의 친척을 모두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슈랜드라도 가족을 전도하였기에 그들의 열매를 보면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한 사람이 정말 예수를 믿으면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그 놀라운 빛의 나라에 저절로 들어오고 싶어집니다. 메뉴카가 처음 한국에 올 때도 놀라운 기적으로 학생비자를 받고 왔는데 지금 8 살 난 딸 수메카는 당시에 4 살이었습니다. 그 예쁜 어린 딸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공부하러 오니 노심초사 주야로 딸이 보고 싶었고 걱정도 되었을 것을 이번에 가서 수메카를 보니 더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한 학기를 힘들어하고 9 월 학기부터 시작하였는데 겨울 방학을 시작하자 울면서 저에게 네팔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같이 자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메뉴카에게 물론 사랑하는 어린 딸이 보고 싶은 것 이해하지만 네팔은 영원히 있을 수 있는 나라이고 한국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없지 않느냐고 설득하니 메뉴카는 울고 슈랜드라는 우는 아내를 달래고 하는 해프닝이 우리 집에서 벌어졌습니다.
그후 계속 듣는 놀라운 주님의 이야기와 사랑은 두 부부의 마음을 녹여주고 성령이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울던 메뉴카는 밝고 웃는 예쁜 모습으로 변했고 그 예쁜 모습은 온 가족을 놀라게 하면서 그 빛의 나라에 함께 들어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확실히 내조하는 내조자로 또 사랑으로 영혼들을 보담아 주는 사랑의 팔로 바뀌었습니다. 예쁜 딸 수메카는 엄마 옆에서 계속 붙어 다니며 우리가 새벽 기도할 때도 함께 기도했습니다.
또 받은 선물은 그곳에서 우리 홀리네이션스를 통하여 목 디스크 수술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떠날 때 고린도전서 13 장을 외우고 돌아간 쨘드라 집에도 초대받아 갔고 이곳에서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수리야의 집에도 갔습니다. 쨘드라는 처음 한국에 와서 얼마 안되어 수술을 받게 되어 복음에 내용을 깊이 들어보지 않을 때였는데 수술하고 몸이 회복되는 동안 우리 기도회에서 같이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았는데 그는 “예수는 구주이시다”라는 방언을 하여 놀라게 했습니다. 타바와 그의 아내는 먼 길에서 우리를 보러 찾아와서 다음 번에는 자신의 집에도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몽골에서도 이곳에 외국인 노동자로 왔을 때 함께 교회에 왔던 식구들을 볼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는데 네팔에서도 슈랜드라와 메뉴카가 있으니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되어 불수가 있었습니다.
메뉴카의 여동생은 우리 모두를 그 집에서 네팔식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초대해 주었고 슈랜드라의 본가와 이모님 댁을 심방하게 되어 네팔인의 실지 삶을 피부로 느끼며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내전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데모하는 군중들을 못 모이게 하느라고 전에도 슈랜드라가 공항에 내려서 6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간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가기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원래 5 월 27 일 헌법을 개정하는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슈랜드라는 우리가 도착하여 도로에 차가 다니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길까 봐 기도를 부탁하였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차량이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어 공항에서 내려서 가방을 끌고 그곳에 줄 선물이 든 박스를 머리에 이고 갈 뻔 한 사태를 막아 주신 것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뜩이나 물 사정이 좋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가 머물 때 새벽에 비가 내렸고 낮에는 거두었기에 더위를 식혀가며 갈수가 있었습니다.
인구의 80%가 집안에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 그 나라가 살아가는데 한국에 노동자로 나갈 250 명의 유니폼을 입은 청년들이 우리가 떠나는 비행기에 함께 대한항공에 탑승을 하여 떠나는 공항에서 우리 일행 다섯 명은 전도를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가슴에는 대한민국 국기가 작게 찍혀 있고 가슴에는 한국에서 근무할 공장의 전화번호가 있는 목걸이를 걸고 빨간 모자를 쓴 그들을 배웅하느라 온 가족이 나와서 네팔의 공항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함께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에 전화번호가 031 로 시작하는 경기도 근처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한국에 간다고 들떠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렇게 단체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 비행기 안에서 타고 올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시간도 허락하셨습니다.
물이 절대 부족하고 저녁이 되면 전기가 나가는 네팔. 냉장고가 있어도 전기가 자주 나가기에 냉장고 음식이 제대로 보존이 안되지만 오히려 물이 많은 한국을 감사할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저희 남편과 권진동장로님 박윤태장로님 그리고 윤권사님과 함께 같이 갔다 와서 당시 7 살이었던 손자 제민이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제민이는 함께 놀이터에서 놀면서 듣는 네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이 많았습니다. “네팔에는 이런 놀이터도 없어요? 전기도 물도 부족해요?” 그래서 제민이에게 “제민이가 좀 도와 줄 수 있어요?” 라고 물으니 도와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제민이가 이제는 10 살이 되어서 지난주에는 외국에 있기에 스카이프로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 하며 기도하는 시간에 제민이가 대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 네팔 사람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좀 도와 주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 제민이 기도의 응답으로 슈랜드라 목사님 가정이 비록 텐트에서 아직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안전하게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네팔에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