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사랑할 줄을 모르는가?”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남녀가 잠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진 “에로스의 사랑”은 요즈음 활짝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벗꽃이나 개나리 진달래 같은 사랑입니다. 마치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은 모습입니다. 전에 이런 노래 가사가 유행이었던 생각이 납니다. “사랑은 아름다워라 아침 안개 속에 두 연인이 키스를 할 때 세상은 그대로 멈추었네 그대는 내 조용한 심장을 두드려서 노래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네 진실한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워라” 이 내용은 “사랑은 아름다워라” 영화의 주제곡이고 아침 안개 속에서 두 연인이 마치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이 바닷가 앞에서 포옹을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은 한 부부가 행복한 비율이 왜 98%는 실패하고 아주 소수만 서로의 사랑하는 반려자로 지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 본문 말씀대로 우리 속에 원함은 있지만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감정이 저절로 잠시 동안 작동하지만 오랜 세월 같이 지내려면 “에로스의 사랑”에서 조건 없이 주신 하나님께만 있는 “아가페 사랑”을 배울 때만 가능합니다.
이 사랑은 단지 부부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끼리 그리고 사업을 한다면 직원들의 마음을 얻고 고객의 마음을 얻고 모든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야만 살아가는데 행복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서 일생 동안 살다가 죽어서 지옥의 본점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요일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일3:14-15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한 권사님이 신문에 나온 내용을 나누어 준 글이 생각납니다.
엊그제 '상식 수준의 연민'이란
제목의 신문칼럼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며, 자기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절대로 순종치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건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건 '내가 좋은 것'이고, 사랑하는
건 '상대가 좋은 것'이랍니다. 꽃이 좋아서 꺾어 화병에 담아 며칠 지나 싫증나면 분리 수거하는 사람이 꽃을 사랑한다고 우길 수 있나요? 동물원에서 과자를 던져주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않은가요?
강아지를 키운다며 성대수술에 번식능력까지 없애며, 좁은 우리에 갇혀 팔려가는 신세의 애완견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자녀들의 미래보장을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자유 함 없이 부모의 틀에 맞추어
시간을 통제하고, 사교육의 노예를 만들며, 의존적이고 경쟁적이며, 폐쇄적이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거짓말쟁이, 위선자, 가식적이고 자신의 정체성도 모르는 영혼 잃은 사람으로 키워내는,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며 돈 걱정 타령을 하는 부모가 사랑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요?
상대의 성장을 돕고 입장을 존중해야 진짜 사랑입니다.
"아프냐?""나도 아프다~"
둘러보면 사람 사이에도 연민은 사라지고.. "진짜 아프냐?"고 되묻는 의심은 요동칩니다. "아프건 말건 내
알 바 아니고~" 이렇듯 무정한 건 '쿨'한게 아니고 그냥 차가운 것입니다.
사람의 체형, 체격, 체질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게 체온입니다. 정상 범주에 못 미치거나, 넘어서면 그땐 죽음입니다. 쉼터,
배움터, 일터를 살아있는 봄날의 온기로 채우려면 '상식
수준의 연민'이면 충분할 듯싶습니다. 꽃(웃음)도 피고, 열매(보람)도 따고.”.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 위주로 생각하는 본성을 가졌기에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거듭나서 새로운 생각으로 바뀌고 새로운 행동을 훈련할 때 비로서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것!! 이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빛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가 되겠습니다.
본성은 →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 받기 원하고 이해 하기 보다는 이해 받기 원하고
성령은→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갈5:13-17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