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쟁이는 강인합니다”
호수 공원 앞에 몇 년째 채소를 무거운 손수레에 끌고 와서 파는 78 세가 된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장사 나온 다른 분들보다 제일 먼저 아침 일찍 그 자리에 나옵니다. 허리는 꾸부정한데 손수레를 끌고 오셔서 하루는 “할머니 내가 좀 끌어다 드릴께요”라고 바퀴가 하나 달리고 삼각 모양으로 생긴 손수레를 끌어보니 균형도 잘 안 잡힐뿐더러 보통 무게가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혼자 그 손수레를 끌고 나온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안 계셔요?” “아무도 없고 아들들은 장가갔고 51 살된 딸하고 둘이 살어” 그렇게 대답을 하셔서 어찌 딸은 손수레를 끌어주지 않고 할머니가 늘 장사를 하시나 여쭈어 보니 정진 지체라는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할머니를 그렇게 강인하게 버티어 주는 힘이 바로 딸을 지켜 주어야 한다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돌아가시던 해에 병간호를 혼자 하시고 돌아가신 후에도 아파트 옆동에 사는 아내를 먼저 보낸 외삼춘에게 반찬을 해 주시던 엄마는 외삼춘 살아계실 때 까지 잘 버티시다가 장례를 치르고 나서는 쓰러지셨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전에 어린 아이가 차 밑으로 들어간 것을 엄마가 순간 차를 들어올렸던 신문 기사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사람을 강인하게 만들어 줍니다. 반대로 전혀 가사일을 할 필요도 없는 귀부인(?)을 사람들은 부러워하는데 대부분 자신은 일을 하지 않고 꼭 강인해 져야 할 필요를 몸에게 지시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많이 병치레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국말로 “쟁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애교가 만점인 사람은 “애교쟁이” 예수를 열렬히 믿는 사람들은 “예수쟁이”. 그런데 “사랑쟁이”라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는 낮설은 용어인 것이 그렇게 “사랑쟁이”가 없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저도 “사랑쟁이”라는 말을 써 본적이 없는데 태어나서부터 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는 교도소에 있는 디모데는 너무나 가족이 그리웠고 가족 있는 사람이 부러워서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 꿈이 가족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5 등급이었고 무기수였던 디모데는 자신을 아들로 삼아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해서 아들로 삼고 사랑해 주기 시작하자 너무나 좋아서 “사랑쟁이 울엄마”라고 불러주어서 낯 설은 이 용어를 우리 모두 일상화하는 꿈을 가져 보았습니다. 디모데는 “사랑쟁이의 왕이신 울 하늘 아빠”라고 마치 문학소녀 같은 표현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쟁이의 아들인 디모데도 사랑쟁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가장 낮은 등급이었던 5 등급에서 2 등급으로 올라갔고 형량은 20 년으로 줄어들었고 그 동안 놀랍게 중고등학교 학사 검정고시까지 합격을 하는 사랑쟁이의 사랑의 열매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쟁이는 사랑을 많이 할수록 강인해지고 또 다른 사랑쟁이를 만들어 낼수가 있습니다. 한편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치유의 최고의 능력도 바로 사랑에서 사람을 살릴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려는 의욕을 심어주게 만들어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