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전도하던 아제이
삼위교회가 새로 건축하기 전에 그 시절에 모습을 종종 그려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교회 앞에는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 벤치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 그늘아래 자주 모여서 대화도 나누고 도시 속에 전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 외국인 쉼터도 바로 그 앞에 있었는데 인도 사람 아제이는 병원에서 간농양 치료 받고 퇴원해서 쉼터에서 지내면서 아침이면 그 나무아래로 와서 힌디어로 된 성경책을 읽다가 사람들이 오면 입고 있던 옷을 위로 올려 보이면서 전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영덕목사님께서 당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주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교회로 가는 길이었다. 그 날 따라 교회 앞 느티나무 아래에는 엊그제 병원에서 퇴원한 아제이 형제가 있었고 그 형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아제이는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선교회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에 아침이면 교회에 나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성경을 읽으며 쉬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간증을 하며 전도를 하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자신의 수술 받은 옆구리의 자국을 보이며 서툰 한국말이지만 명확하게 말을 건 냈다. ‘삼위교회 마마킴이 병원에 데려다 주고 수술 받게 해 줘서 하나님이 고쳤어요. 돈 많이…..천만원 들었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제이였다. 그날도 동네 사람들은 아제이의 이 힘있는 말을 듣느라고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 아제이, 변두리인 아제이, 그는 이제 이방인이 아니다. 변두리인도 아니다. 힌두교인은 더욱 아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요, 지구촌의 주인이다. 이제 그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하여 누구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누구 앞에서나 담대했다. 어디에서나 당당했다. 요한 복음 4 장에 나오는 수가성의 한 여인이 예수를 메시야로 알고 받아 들인 후에 희열과 감격에 찬 모습으로 동네에 뛰어 들어가 메시야를 만나보라고 외치고 다녔던 것이 이러했으리라. 아제이는 지금 다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피부색이나 외형은 옛 그대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의 마음도 생활도 달라졌다. 밝고 활력이 넘치고 있다. 결국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또 한 사람의 잃어버렸던 영혼을 찾은 것이요 죽은 영혼을 살려낸 것이다”
아제이는 진심으로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세례를 받았고 그 후 먼 곳에 취직을 해서 그곳에서 한번 교회를 오려면 세시간이 걸려서 왕복 6 시간이 걸렸고 차비는 만원이 들었지만 빠지지 않고 예배 참석을 하였습니다. 외국인에게 교회에 오기 위해서 만원의 차비를 쓰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신론을 믿는 힌두교인 다른 인도사람들과는 달리 아제이는 “따로 따로” 절대 다르다는 것을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과 예수님은 다르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늘 아제이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샤모시(인도어로 예수님이라는뜻) 없어, 아제이 없어” 즉 예수님이 아니면 자신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의 병원비 천만 원이 넘었을 때도 항상 이런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제이를 위해서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하셨을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리라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기에 순종만 있을 뿐이다” 라고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직접 앞서서 행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에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함께 갖게 하시고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늘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놀라며 감격하며 가는 것이 신앙의 진수라고 고백하겠습니다.
이 진수를 맛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