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기진할까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막8: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목수의 손”이었던 주님의 손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에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고 이 많은 군중들을 보는 주님의 눈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가르쳐 주시지만 그들의 인간의 배고픔을 그냥 외면하고 “우리는 영혼구원”만 하는 것이다” 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신 모습으로 온 성탄은 다시금 가슴이 미어지는 감동이 넘쳐납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억하며
사람들이 무시하는
가문을 택해서 오신 주님
사람들이 바라볼 때
전혀 잘 생기지도 않고
좋은 체격도 아닌 외모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학문도 없었던 우리 주님
제자들에게도
나는 섬기는 자로 있단다
말씀하시며 섬김을
몸소 보여주신 주님
목수 일을 하셨기에
귀공자의 손과는
반대 되는 손을 가지고
고통 당하는 자를 어루만지신 주님
고대 강실이 아닌
동물이나 태어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주님
낮은 대로 임하신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메어옵니다
낮은 대로 임하소서
우리도 그 겸손을
가르쳐 주시고 배우게 하소서
주님은 많은 아픈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병이 나섰으면 그것으로 감지덕지 할 일이고 어차피 이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고 오직 위를 보고 우리는 그것만을 전파한다” 라고 모델을 보여주셨다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얘들아, 먼데서 온 사람들도 있고 나하고 사흘이나 있어서 굶겨 보낸다면 길에서 기진할 터인데 굶겨 보내지 못하겠구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가 값비싼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이 어찌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될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는 굶주린 이웃들이 너무나 많은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시고 계시는 그 음성을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 눈을 조금만 이웃으로 뜨고 보기를 원하시며 이런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마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우리는 그럴 때 어떤 대답을 할까요?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눈을 들어 주위를 보라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해
죽어가는 귀한 생명에게
너희가 먹을 것 좀 주렴
“나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좋은 것만 먹는데요” 이렇게 대답들을 하지 않을까요?
오스트리아에 부유한 집에 딸이 왕가로 결혼을 하게 되어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전혀 백성들을 생각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면서 그들은 빵을 먹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에게 생전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왕비는 “왜 케익도 먹지 빵만 먹으려고 하느냐?”고 해서 백성들은 폭동을 일으켜서 정치체재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경험해 보지 않기에 그런 발상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초대 영부인인 오스트라아에서 온 그분은 쌀값이 오른 것을 걱정하는 여론을 듣고 “왜 고기는 안 먹고 쌀만 먹어서 그러느냐”는 의견이 사람들 사이에 많은 반발을 일으켰는데 우리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낮은 서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우리 주님은 낮은 대로 임하시며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시고 낮아지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낮아지심을 따라가야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