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은”
“엄마”라는 말은 “당신을 믿어요”라는 뜻입니다
“엄마”란 말은 “당신은 나를 보호해 줄 거예요”라는 뜻입니다.
“엄마”란 말은 다급할 때 외치는 이름
“엄마”란 말은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존재
“엄마”란 말은 슬플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존재
“엄마”는 창피할 때 뒤에 숨을 수 있는 존재
“엄마”는 상처를 호호 불러 주고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엄마의 품은” 포근하고 안전합니다.
미국의 상당히 부유층에서 자란 케이티 데이비스 이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모습으로 일년만 우간다에 갔다 온다고 했다가 우간다의 어린 소녀가 “엄마라고 불러도 되요”라는 말에 우간다에서 몇년을 계속 그 고아들을 돌보면서 쓴 책에 나온 글입니다.
네팔에 목사님 슈랜드라는 나이가 우리 아들하고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 부르다가 한국에서 신대원 공부 석사과정과 Th.M 과정을 공부하고 아내 메뉴카와 이곳에서 결혼식도 시켜주고 하면서 언젠가 부터는 “엄마”라고 부릅니다. 슈랜드라의 네팔의 소식은 항상, “Dear Mom” 이렇게 시작하면서 “엄마의 아들, 딸로부터”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합니다.
슈랜드라 목사님 부부를 이곳에서 결혼식을 시켜주고 그때 시간이 방학때여서 두 부부를 제주도 신혼 여행도 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은 대로 네팔에 가서도 그렇게 해요”라고 이야기 해 주고 첫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네팔에 갔을 때 방 하나는 우리 선교회의 쉼터처럼 만들어서 지방에서 올라온 고등학생들을 묵게 하면서 그들을 공부도 가르치고 다른 사람도 결혼식도 시켜 준 부부가 함께 있던 것을 보았습니다.
진짜 엄마는 자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자기는 간단하게 먹습니다. 인도나, 몽골, 네팔등지를 남편과 같이 여행하면서 우리는 아주 간단한 음식을 먹고 절대 비싼 외식은 하지 않습니다. 90 년 초에 인도를 갔을 때도 선진국에서 한끼 외식비는 그들을 몇 달을 먹게 할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일찍 깨닫게 되었고 지금도 최대한 돈을 아껴서 우리가 지원하는 8 나라에 지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간다에서 고아의 엄마가 된 케이티 데이비스는 이렇게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고아가 1 억 4400 만명이고, 기아나 충분히 예방 및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1100 만명이며 노동 학대나 성매매 같은 끔찍한 조건에서 사는 아이가 850 만영이고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280 만 명이다. 모두 합치면 고통중에 신음 하는 아이가 1 억 6480만 명이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지구의 그리스도인의 숫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이 자그마치 21 억명이다. 이 그리스도인들 중 8 퍼센트 만 한 아이씩 책임 진다면 위의 통계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주님은 모두를 돌보지 않아도 좋으니 ‘딱 한 명만’을 위해 발걸음을 멈추라고 말씀하신다” 병이나 비극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사회에서 사는 일이다” “우리 가족은 사랑을 나눌수록 나눠 줄 사랑이 더 많이 생긴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다.”
지난번 순천교도소에 갔을 때도 그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감자들을 한명씩 모두 맨토가 생겨서 디모데 처럼 돌본다면 정말 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번 두번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진정한 가족을 돌보는 마음이 된다면 정말 교도소 건물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신실하신 분이 “소년의 집”의 사연이 KBS 에서 엄마가 없으므로 생긴 아이의 이야기를 보고 15 살에 들어가서 이제 20 살이 되어 성인교도소로 이송된 것 보며 자신도 디모데처럼 편지를 계속하고 계속 면회를 갈것이라고 고백하며 순종할 뜻을 밝혔습니다.
“21 억이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8 펴센트만 사랑을 실천한다면” 이 말은 정말 우리 가슴을 울려줍니다. 케이티도 우리가 느낀 것과 똑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셔”라고 해도 아이들은 못 느끼는데 먼저 사랑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 다음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 잘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할 때 기적은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지난 주일 외국인 예배를 마치고 모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엘자 전도사님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카자스탄에서 온 남자분이 내게 놀라운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12 살이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한국에서 학교를 가다가 교통 사고가 나서 내게 전화를 했던 장본인이고 그때 동국대 병원에서 나를 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어서 다른데 가던 차를 방향을 틀어서 왔습니다. 그 아들이 지금 21 살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사진을 보여주기에 같이 기쁘게 웃었습니다. 그날 전화를 받고 동패리 쪽에 공장을 가다가 이쪽으로 오면서 기도를 하면서 운전을 하고 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은 병원비가 엄청 비싸고 그렇게 우리와 협력하는 병원이 아닐 때는 더 비싸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호등 하나만 받고 들어가는 동국대 병원 앞길에서 한 교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활절 헌금을 모두 우리에게 보내기로 작정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병원비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부활절이나 절기헌금을 우리에게 보내 준 적은 단 한번만 생겼던 일입니다. 그 어린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아빠는 다시 한국에 나와서 우리 교회에 온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는 데만 관심이 있는데 “순종한 만큼 하늘 문이 열린다”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욱 순종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매일 매 순간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