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라면?”
아들이 군대를 입대했을 때는 이 월초였습니다. 날씨가 그 해는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6 주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전화도 이메일도 안되고 오직 손으로 쓴 편지만 전달되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루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추운 날씨에 배낭을 매고 야외 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저녁 밥을 먹으려고 차려놓으면서 편지를 열어서 읽기 시작하는데 “야외에서 추운 땅 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려고 하니 너무나 추웠어요” 라는 그 한 줄을 읽기 시작하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있는 엄마가 미안했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저녁을 전혀 못 먹었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는 낙 옆이 떨어지면 연병장을 쓰느라고 수고할 생각을 하고 눈이 쌓으면 눈을 종일 치울 생각을 해서 길에서 군인만 보아도 아들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 지곤 했습니다. 아들이 제대하는 날을 학수 고대해서 지금도 제대한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아들에 대한 마음인데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아들 나이와 비슷한 청년들이 인도네시아 후로레스 라는 지방에서 불법으로 넘어와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가서 열심히 말레이시아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요하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우리 아들하고 동갑이었습니다. 요하니스에게 가서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한 가족이 된다고 이야기 했더니 요하니스는 “엄마 같아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도 그 말이 내 귀에 맴 돌았습니다. “엄마 같아요”
“아들이라면 아침을 굶고 일년 내내 35 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서 노동을 하는데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점심 시간이 되면 대야 같이 생긴 뚜껑도없는 그릇에 점심 시간 한 시간 동안 밥하느라고 서둘러서 겨우 밥이 되면 허겁지겁 먹고 다시 노동을 하는데 아들에게 밥을 그렇게 먹게 하지 않겠지!” 요하니스의 “엄마 같아요”라는 말은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전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밥을 해 주도록 만들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더운 나라이기에 새벽 일찍 시장이 열리고 낮 12 시면 시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요하니스가 있는 곳에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40 명 정도가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서 차에 싣고 갔습니다. 새벽에 시장에 가서 그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배워서 만들어서 점심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집안에 에어컨 시설이 되어 있어도 눈으로 땀이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차가 도착해서 도시락을 내리는 모습만 보아도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싱글벙글 입이 귀로 붙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후로레스 지방에서는 엄마를 “마마”라고 부르는데 매주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부끄러움도 타고 하다가 어느 날 인가부터 너도 나도 “마마”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마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그렇게 같이 점심을 먹고 저녁에 만나서 성경을 암송하게 시키면 밥을 먹여주는 엄마가 부탁한 것이기에 그렇게 열심히 암송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숙소 에는 그렇게 더운데 선풍기 하나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삥 둘러 앉아서 같은 성경을 너도 나도 암송을 하니 같은 성경을 한 장씩 몇 번을 듣게 되고 요하니스는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마, 늘 성경을 읽고 암송을 하다 보니 성경은 내 인생에 나침반이 되었어요”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엄마 나 배고파!” 엄마는 늘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해 놓지요. 김장환목사님 아드님이 쓴 책에 “가정- 곧 엄마가 있는 곳”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훨씬 더 높은 사랑이죠!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