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이 밝아질 때→인도네시아 데니 이야기
엡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에게는 얼굴에 달려있는 두눈과 마음에 눈으로 보는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안보이고 마음의 눈이 밝아질 때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보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보이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청년 데니이야기는 마음의 눈을 밝히고 보았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전도의 여왕”이라고 별명을 부쳐줄 정도로 전도를 잘하는 윤권사님이 식사동 끝에 위치한 공장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은데 같이 가자고 해서 그곳을 갔습니다.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가 같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살던 어설픈 실력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같이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마자 그 공장이 아니고 다른 금촌에 있는 공장에 이들의 친구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통 외국인 숙소는 공장에 콘테이너을 두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밖으로 나와 있는 철재 계단이며 아주 위험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데니는 한국에 온지 삼사 개월밖에 되지 않는 청년이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아주 좋아하는 소주를 마시고 이층을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져서 머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런 위급상황이 생기자 식사동에 있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내게 전화가 와서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이런 상황을 알렸습니다. 즉시 데니를 엠브란스로 실어서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데니는 머리 전체에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에 호흡을 하게 하고 마치 죽어있는 시체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혀 온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곧 사망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뒤로 넘어지면서 뼈가 부러지고 피가 호흡기로 들어가서 폐로 들어갔기에 호흡곤란이 생명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몸을 뒤척이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그의 이미 죽어버린 몸을 보는 것 같은 그 시간 속에서도 “내 마음의 눈”은 우리 주님의 힘의 위력이 지극이 크심을 믿고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중환자실을 수시로 서울시내까지 가서 데니를 보면서 못 가는 날은 중환자실에 전화를 하면 간호사의 대답은 “아직 안 돌아가셨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돌아가시다니요”라고 되받아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보름이 지나자 전혀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던 데니가 면회시간에 보니 손가락을 아주 약간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더욱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 의지해서 데니를 붙잡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이기도 하고 또 중환자실은 엄청 비싸기에 그의 병원비는 하루 하루가 쌓여가지만 나는 단순한 믿음으로 데니를 지켜 보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더 시간이 가고 한 달쯤 지났을까 생명의 주관 자이신 우리 주님은 그를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자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데니에게 인도네시아말로 물었습니다. “누가 데리고 이 병원으로 왔어요?” 그의 대답이 신기하게도 “크리스토스”라고 인도네시아말로 답하는것입니다. 한데 그는 뇌에 뼈가 부러져서 기억력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 다음날 나를 보면 누구나고 또 물어보곤 했기에 그는 전혀 나를 인식하고 있는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대답이 하도 놀라워서 다음날 면회를 가면 또 물었습니다. “누가 데리고 이 병원에 왔어요?” “Bernar benar Kritus(진짜 진짜로 그리스도예요)” 라고 눈물을 흘려가며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90% 가 넘는 무슬림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 온 청년이 자신의 죽음문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것이 그리스도가 데리고 온 경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살아났고 그의 치유는 기적을 일으켜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외국인 수백 명을 입원 수술 시키는 가운데서 단 한 명도 본국에서 전화로 자신의 자녀의 안부를 묻는 경우가 없었는데 데니는 친구들을 통해서 알았는지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아서 아버지가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했습니다. 보통 국제 전화비가 너무나 비싸서 걸지 못하는데 데니 아버지는 매일 전화를 했고 비자를 데니 엄마하고 받아서 한국으로 가려고 한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비자 받는데 제 3 세계는 오래 걸려서 두 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고 데니는 거의 다 나은 상태였습니다.
데니의 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입이 놀라서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부모님이 아니라 겉으로 보아도 아주 부티가 나고 지성이 뛰어나신 분들로 보였습니다. 더 놀란 것은 두 달 전에 8 남매의 막내아들을 그리스도인이 죽을 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살렸다고 인도네시아에 가서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개종을 해서 우리 예배에 참석해서 데니 어머니가 찬송가를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하셔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데니는 가난해서 노동자로 온 경우의 다른 외국인과는 달리 아주 부유한 집의 아들인데 친구들이 너도 나도 한국에 가니까 같이 따라와서 술을 마시고는 그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셨고 그를 살리셨습니다. 데니만 살린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한가지 더 놀란 것은 데니 아버지가 1065 만원이 나온 병원비를 다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공항으로 배웅하는 우리는 너무나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보는 즐거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해 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가족이 전화를 바꾸어 주면서 안부를 몇 년째 하면서 감사를 표시하고 같은 주님을 믿는 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 경험도 선교의 현장에서 홈런을 날린 것과 같은 기억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