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항병을 치료하신 주님
“쉐항병” 이란 애기가 태어날 때 항문이 막힌 병을 말합니다. 전에 민비가 출산한 아기가 바로 이병에 걸려서 곧 사망한 것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쇄항병이 걸리면 사망을 하는 것이 애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곧 젖이나 우유를 먹고 배설을 해야 하는데 배설을 하지 못하기에 막혀서 젖을 줄 수가 없고 그러기에 곧 사망을 하게 되는 병입니다. 이런 애기를 하나님이 건강하게 키워 가도록 하시는 간증을 한 집사님이 보내줬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예레미야애가5:7)"
고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나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이십대를 건강하지 못한 두 교회를 다니며 영적으로 혼란스럽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참 고달픈 유학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과 친척들 중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술을 매일 마시는 아버지 밑에서 형제들 모두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큰오빠는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일, 이등 할 정도로 똑똑하고 장남으로서 듬직하여 집안의 희망이었는데 우울증과 정신질환, 환청으로 집안은 더더욱 황폐해져 갔습니다. 큰오빠는 그 질환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심한 욕설을 가족들에게 퍼 붓습니다. 그런 집을 떠나고픈 간절한 소망으로 도피유학을 갔지만 삶은 더 외롭고 끝이 없는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와중에 붙들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성경 말씀이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몇 번을 통독해 가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겨우 숨을 쉬고 살아왔으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잠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스스로가 도저히 신앙인으로 살 수 없는 구제불능 같게 느껴져 하나님께 "저의 손을 놓으세요. 저도 당신의 손을 놓겠습니다." 하며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죄 된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도망쳤던 가정으로 도로 옮겨놓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 없었고, 매일 더러운 욕설과 살해당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우울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느 깊은 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일으켜졌고 무릎이 꿇어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그렇게 새까만 검정색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만큼 새까만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보자마자 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주님! 저는 예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군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테니 도와 주세요" 라는 고백을 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큰오빠로부터의 더럽고 역겨운 욕설과 살해위협과 더불어 신앙을 지키기도 힘든 더 극심한 핍박과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미혼 때의 지독한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선 때마다 말씀으로 저를 붙들어주셨습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씨름하듯 기도하는 시간을 몇 년 동안 보내면서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저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는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불행하고 아픈 환경의 가정 안에서 자라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결혼을 꿈꿀 수 없는 환경 같았지만 앞으로 만날 남편과 남편가족들 심지어 미래에 만날 나의 자녀를 위해 손을 배에 얹고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겐 가정의 불행으로 인한 외로움이나 고통을 절대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결혼 할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누가 보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한대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삼십 년 세월 '슬펐다'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내 삶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가정사든 내 개인의 문제든 다 오픈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나를 떠난다면 내 사람이 아닌 것이고,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평생
웃게 해줄게". 남편의 프로포즈였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했고 삼 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되었지요. 임신 중에도 혼자 사는 큰 오빠에게 반찬을 만들어다 주면 때로는 쉰 것 가져다 준다고 하기도 하고 온갖 욕설을
퍼부어서 뱃속에 애기가 그 욕설을 다 들어서 항문이 막힌 병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보니 아이는 쇄항이라는 질환으로 수술을 바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 알아봤지만 모든 병원마다
수술은 한달 이상 밀려 있는건 기본이고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조차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마침 남편 회사의 회장님이 신촌세브란스 소아과병원장과 만나고 있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나라 소아 쇄항의 일인자 의사분과 연결시켜 주셔서 기적처럼
바로 병원을 옮겨 일정을 잡고 다음날 수술할 수 있었습니다. 회장님과 병원원장님이 서로 바쁜
가운데 중요한 일로 겨우 스케줄을 맞추고 만나던 중이었는데, 그 일을 통해 그날 우리아이를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준비된 손길을 경험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바로 수술을 못했다면 우리
애기는 민비의 자녀처럼 힘들게 받은 자녀를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감사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조리원에서 아이에 대한 걱정에 마음을 졸이며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하며 지냈고, 아이는 수술 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열흘 가량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이 얼굴도 못 본 채 하염없이 울기만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가 그렇게 태어난 것에 대해 원망의 대상을 찾았습니다. 임신 중 갖은 협박과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주었던 큰오빠를 향해 온갖 저주와 화를 퍼부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향해 ‘날 죽이시던지 오빠를 죽이시던지 하시라고’ 울며 부르짖었던 때도 있었지만,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생활비와 용돈, 생일 등을 챙겨주고 종종 반찬도 만들어다 주는 등 임신 중에도 그렇게 도와주고 있었는데 큰오빠는 늘 원망과 불평과 욕설로 끊임없이 가족들을 괴롭혔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자, 오빠 탓으로 돌리고 더는 용서하지 않겠노라고 절규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큰오빠와 인연을 끊고 살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었으며, 오빠가 죽는다 해도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한 가닥 겨우 남은 실오라기 같은 긍휼의 마음을 끊어 버렸습니다. 오빠가 굶어 죽어도 음식이 남아 썩어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주지 않을 것이고 오빠가 죽어가도 절대 만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었습니다.
아이의 돌이 될 때까지 두 번의 수술과 집과 병원을 오가며 계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너무 힘겹게 지나 정작 아이를 키우는 기쁨은 맛보지 못했고, 수술부위의 원활한 회복 후 그것으로 끝이 날줄 알았는데 방광기능이 약해서 전기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 치료가 일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오 년이 걸릴지, 치료 후 상태가 확실히 좋아질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치료 때문에 매일 항생제를 먹어야 했는데 두 돐 지난 아기가 항생제 때문에 연약한 속이 얼마나 상해갔는지, 입에서는 썩은 냄새가 났고 이유식도 밥도 잘 먹지를 못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몸만 다닌 것 같은 죄책감에 남편에게 눈물의 편지를 쓰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잊고 산 것 같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말씀통독과 묵상, 기도, 회개의 시간을 가지면서 삶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 드렸습니다. “저 어린것에게 몇 년을 어떻게 항생제를 먹일 수 있습니까? 일 년 만에 치료가 끝나게 해주세요. ‘더 이상 치료를 안 받아도 되겠네요’ 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선포되게 해주세요." 매일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며 말씀통독과 묵상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년의 치료기간이 지나고 중간 검진 결과를 보는 날이었습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주치의를 만났고 의사선생님은 제가 기도한대로 우리
아이가 더 이상 치료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결과를 듣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맘속으로 "할렐루야" 를 외치며 너무 기뻐서
다리에 힘이 빠져 병원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그렇게 삼 년간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며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 우울증 증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늘 영적으로 목마르고 갈급하고 외로웠습니다. 살만해지면 다시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영적인 앉은뱅이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 즈음 외국인 근로자들의 선교사역을 하시는
김상숙권사님의 책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생명의말씀사)" 를 선물 받고 읽으면서 울고 또 울며 청년부 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봉사 다니던
동아리모임과 일본 선교팀을 꾸려 가던 행복했던 기억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편집하고
선물했던 친한 동생이 그 선교회에 기도모임을 간다고 해서 나도 꼭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었지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이년여 시간을 홀리네이션스 가족들과 말씀을 나누고 듣고 배우고 행하며 살아가는 동안 아이도 거의 잔병치레도 없고 수술 후 동반되는
후유증도 없으며 감기나 열이 나도 병원을 자주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해 나갔고 먹어야 할 시기에 먹지 못해 몸은 작지만 당차고 명랑하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만나기 위해 배에 손을 얹고 어떤
기도를 드렸었던가 생각해보면 수많은 내용들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예레미야애가의 고백처럼 우리 조상의 죄와 내 죄가 되물림 되지 않고 축복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과 앞으로 아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한 만남의 복,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 친구, 선생님, 배우자, 이웃들을 주시고 또한 내 아이가 그 누군가에게 만남의 복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던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허리통증이 오랜 동안 고질병처럼 심하여 어떨 땐 삼 일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치료받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해왔지만 잘 낫지 않아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허리통증까지 나았습니다. 치유에 있어서
말씀대로 행했을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저의 허리통증을 고쳐주세요. 저는 다른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병원치료를 끊고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아픈 사람 병문안도
가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들어주고 위로하고 시간 나는 대로 걷고 그렇게 한 달을 보내는데 어느새 통증이 사라졌고 이 년여
지난 지금까지 허리통증으로 병원간 일도 없으며, 어느
땐 독감에 걸려도 하루 만에 회복될 때도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순종했던 것은 가족의 고통의 원인인 죽이고 싶을 만큼
용서가 안되었던 큰오빠를 다시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사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느 날 이사야서를 읽는데 여기서 막혔습니다. 나는 내 골육인 큰오빠를 피해 인연을 끊고 삼년을 살아 오면서 그것이 죄가 아니고 나를 지키고 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말씀 중 가장 좋아하는 이사야서를 수도 없이 읽었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는지 조차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하기 싫었습니다. 다시 그 고통의 연결고리를 연결하는 것이 끔찍했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아 무릎 꿇었다 일어나기가 몇 번인지......
김상숙권사님께 카톡으로 괴로움을 호소했고, 권사님께선 ''순종해야 능력이 나옵니다" 라는 짧은 글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때가 큰오빠의
쉰살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을 때였고, 억지로 하려 해도 나오지 않는 기도를 포기하고 큰오빠에게 가져다
줄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큰오빠의 생일을 계기로 둘째 오빠와 남편과 세 살이 된 딸아이와 함께
삼 년 만에 만남을 시도했지요. 딸아이는 큰삼촌의 손을 그 때 처음 잡아보았습니다. 큰오빠가 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딸은 손을 슬쩍 빼는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반찬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큰오빠가
변했을까요? 아니요.. 여전히 가족들을 향해 원망과 불평과
욕설을 해댑니다. 그런데 제가 변해 있었습니다. 큰오빠가
주기적으로 난리를 치고 괴롭혀도 예전처럼 마음이 두렵거나 분노가 나지 않습니다. 이십오 년째 큰오빠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큰오빠를 위해 물질과 수고와 시간을
내어 계속 도와주는데도 여전히 감사하지 못하고 죽일 듯이 욕하며 원망하고 불평 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병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엔 큰오빠나
나나 우리 인간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요, 오십 보 백 보인 것입니다.
사58: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이렇게 멋진 약속의 말씀이 제게 임했고 그렇게 고질병이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은 용서가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치료도 끊었는데 한달 만에 씻은 듯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어떤 질병이 걸렸을 때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든 고난이든 그 어떤 문제든 말씀 안에서 먼저 답을 찾아나가는 믿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게 된 저 개인적인 큰 체험입니다. 치유 받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자 노력했고 용서했을 때 일어난 치유였습니다.
절대 순종할 수 없는 일을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순종의 때는 오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셨으니 단순하게 먼저 몸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마음까지 부어주셨음을 체험했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압니다. 이십 년 이상을 교회 다니면서 진짜 예수님을 믿어왔는가 다시 깊이 되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고요?? 저도
그랬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실제 삶은 지옥에 살듯이 고통스러워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앞으로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온전한 천국으로 그대로 가리라
결단하고 또 결단합니다. 매일 주저앉고 싶은 힘겨운 상황이 온다 해도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 아닌 오늘의
천국과 오늘의 행복을 택하리라 결단했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내 가정에 내
자녀에게 되 물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죄악이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내 후손이 그 죄악을 담당한다는
이 무서운 죄악의 고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끊고, 자녀들에게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한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위의 예레미야애가 말씀을 청년의 때에 내 심령에 심어주시고 내 후손들의 삶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치유는 회개와 용서와 감사와 행함에 있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회개가 아닌 내가 옳다고 고집해왔던 절대 변치 않을 것 같은 잘못된 생각을 말씀이 중심이 되어 바꾸고, 내 몸을 쳐서 행했던 크나큰 체험이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대상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행함, 이제까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삶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말씀 안에서 찾아, 때마다 마음에 심어주신 말씀대로 행함. 이제까지 지켜주시고 나 같은 사람을 참아주시고 인내하시고 나는 하나님 손을 놓았지만 나의 손을 절대 절대 절대 한번도 놓으신 적이 없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해질 수 있음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들을 이글을 통해 나누어 봅니다.
삼십 팔년된 병자를 향해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5~6)", 맹인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10:51)"
이사람들은 ‘이렇게 살다
죽지, 이대로가 편해, 지금도 나쁘지 않아, 나 편한대로 살래’ 가 아닌 고침을 받아 일어나 걷고, 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돈도 세월도 허비한 혈루증을
앓는 여인(눅8:43~48)은 절망하고 주저앉은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만져 낫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 병자가 건강해져서 또 저 맹인이 눈뜬
후에는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돈도 벌고 고생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구걸해서 먹고
사는 편이 훨씬 편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낫고자 하는 의지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픈몸으로 세월도 돈도 마음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의지! 지난 세월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 더이상 죄를 짓지않겠다는
의지! 아름답고 황홀하게 다가오는 죄가 징글징글하게 싫어져서 끊어버리고자 하는 의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가 자주하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끔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고 나와의 싸움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사는 게 더 끔찍합니다!!!"
주여! 내가
낫기를 원합니다!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앉은뱅이와 깨닫지도 주의 영광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영적인 맹인처럼 귀머거리처럼 병자처럼 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