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모습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건강하게 하는 치유자가 되어야 하고 우리 가족도 또 다른 사람들도 치유하는 일을 같이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치유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
치유의 정의는 세상이 줄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 배달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치유는 기쁨 배달로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셨어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말 못하는 사람은 말하고
장애인은 온전하게 되고
시각장애인은 눈을 뜨고
다리를 잘 못 걷는 사람은
잘 걷게 되고
죽은 사람도 살아났지요
연약하고 두려웠던 심령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살다 보니
강하고 담대하고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심령으로 바뀌었어요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올라오면서
이 모든 병은 사라졌어요
주님은 우리를 심부름 보냈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기쁨을 배달하는 사람이 되라고요
기쁨을 가지고 가는 데마다
아픈 사람들이 살아나는 장면을
수시로 보게 되어요
기쁨 배달왔어요!!!
((마15:31,요15:11절말씀)
*치유자의 자세
막16:17-18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행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여기서 “손을 얹은즉” “손을 내밀어” 두 말씀을 잘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손을 통하여 아픈 사람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달하게 됩니다. 병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도구가 됩니다.
“불구는 없다” 라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한센 환자들에게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해서 놀라운 치유를 전 세계적으로 한 폴브랜드는 그런 의사로서 자신에게 환자를 어떤 모습으로 치료하는지를 가르쳐준 선배 의사님 로빈 필처(Robin Pilcher) 에 관하여 그분이 쓴 저서마다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필처교수님의 친절한 미소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긴장을 완벽하게 풀어 주었으며 환자가 어떤 고통도 다 진실하게 말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필처교수님은 청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위에서 환자를 내려다 보고 치료하는 대신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그의 눈높이에 맞추고 손을 따뜻하게 비벼서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진찰을 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처 교수님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롤 모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전에 소록도에서 일생을 헌신한 마가렛드, 마리안느, 마리아 세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당시에 다른 의료진은 창문 사이로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한센 환자들을 대했는데 이 세분은 환자들을 끌어안아주고 마사지 해주고 하였다고 권진동장로님이 이 세분들이 한국을 떠나기전 마리안느 수녀님이 사시는 집에 데리고 가서 같이 수녀님이 따라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세분들도 사십 년을 그곳에서 환자들과 같이 지내면서 주님의 가르침대로 치유를 하신 분들입니다.
소록도 두 수녀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두 수녀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그리고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날은 지난달 21일이었습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빈다”고 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는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손수 죽을 쑤고 과자도 구워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소록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부터 수천 환자의 손과 발이되어 살아 왔는데, 지금은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서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은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 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버림의 섬, 건너의 섬에는 두 성녀가
다녀가신 곳인가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보살핀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님 "처음
왔을 땐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간 고향 오스트리아는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오히려 낯선 땅이 되었습니다.
지금 수도원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소록도가 그리워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 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쓰여 있다고 합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헌신하신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정확하게 병원선교를 시작한 첫해가 1988 년부터 결핵병원에서부터 시작을 한 것이 선교에 모든 것을 내 삶을 드리겠다고 주님께 말씀 드리고 나서 주님이 인도하신 첫 환자들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백명의 입원 수술을 도와주고 환자들과 함께 하기 전에 결핵병원에서 몇 년동안 하고 홍콩에서도 각과를 돌면서 선교를 병원에서 주고 하면서 현장에서 배운것입니다.
치유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수칙이 환자는 한번에 병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과 함께 있어주고 넘어질 것 같은 마음을 붙잡아 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인사상으로 가는 병원 방문이나 일년에 행사로 특별한 시기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행사로는 전혀 효과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 아픈 사람이 퇴원할 때까지 함께 하면서 나의 시간과 물질과 주님 주신 것을 함께 공유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납니다.
몸이 아픈 분들에게는 특별히 그분들을 위하여 매일 중보기도하는 반면 요즈음은 문자로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을수 있으니까 그 환자들을 위한 시간을 특별히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평균 30 분 내지 때로는 그 이상의 시간을 일대일로 가집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진심으로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델이기도 합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치유의 단계
마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첫째,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며 동시에 환자들을 보시면 불쌍히 여기시며 고쳐 주셨습니다-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이런 마음을 가졌을 때 치유는 일어납니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둘째, 예수님은 명절에도 환자를 찾아가셨습니다. – 우리도 이런 사랑을 배워야 치유가 일어납니다.
요5:1-5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 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
셋째, 예수님은 바쁘신 스케쥴에도 병자가 도움을 요청할 때 멈추셨습니다. – 우리도 바쁘다는 핑계로 환자의 도움을 소홀히 하면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9:27-3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넷째,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 먼저 믿음을 확인하신 것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 우리도 이 믿음을 소유해야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도 치유가 일어납니다.
두 맹인이 눈을 고쳐 달라고 하실 때 질문하신 내용을 묵상하면 “내가 능히 이일 할줄을 믿느냐”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섯째, 이 믿음이 없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한테는 능력을 베푸실 수가 없었습니다.-우리도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막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이 믿음은 확고한 믿음이어야 치유가 일어나지 “할수 있거든 해주세요” 라는 믿음으로는 안됩니다.
막9:16-27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여섯째,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 승천후에 치유를 하면서 사람이 치유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가 된 것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많은 병자들을 고친것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아예 질병을 가져 가셨습니다.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행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일곱째, 치유가 점진적으로 되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막8:22-25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일곱째, 죄를 지면 이미 나았어도 더 심한 것이 생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을 보고 우리도 자신을 죄에서 싸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요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전에 폐결핵 환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들은 병원에 있을때는 성경도 읽고 예배도 드리고 병원내에서는 담배나 술을 금하니까 잘 치료되고 일단 퇴원해서 뒷산에 지은 판잣집으로 가면 집집마다 집앞에 소주병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병이 다시 걸려서 또 입원을 하는것입니다 그중 한명은 우리가 쉼터를 열자마자 나를 찾아왔습니다. 자기는 이제부터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할 터이니 받아달라고 해서 방을 하나 내 주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열심히 해보려고 하다가 다시 옛사람에 사로 잡혀서 식사도 않하고 방에 수도 셀수 없는 소주병을 마시고 나둥구려 놓고 나갔습니다. 다른 결핵환자도 오갈데 없다고 해서 방을 얻어주고 방안에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해 주고 집에 돌아왔는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해어졌는데 그날 새벽에 집으로 119 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길에서 술마시고 잠을 자서 연락처를 말하라고 하니 우리 집 전화번호를 주었던것입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법하지 말라고 주님이 신신 당부를 하셨는지 이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