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65)
엘자 전도사님하고 오늘도 두군데 병원을 같이 갔는데 동국대 병원은 네팔 사람 라이가 수술을 해서 갔습니다. 여러병원에 다른 추억들이 있는데 동국대 병원에서는 두 번의 추억의 환자들이 생각납니다. 전에 카자스탄에서 온 샤샤 친구의 딸이 자전거 타고 교통사고 났는데 샤샤는 고려인으로 교회를 열심히 출석했던 청년입니다. 샤샤의 친구는 전에 엘자 전도사님이 전도하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린 딸이 학교를 간다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사고가 난것입니다. 이분은 샤샤에게 내 전화 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했는데 우는 목소리로 어떻게 하냐고 지금 응급실에 왔는데 도와 달라고 하는것입니다.
동패리 쪽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서 가던 핸들을 반대로 꺽어서 동국대 병원으로 오는 동안 십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하는것입니다. 그때 우리 선교회 계좌에는 잔고가 병원비를 줄 돈이 없었습니다. 운전을 하고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퀵서비스를 동원하셨습니다. 동국대 병원을 바라보고 마지막 신호등앞에서 서 있을 때 한 교회에서 부활절 헌금을 전부 우리 선교회에 보내기로 결정되어서 보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한 교회에서 부활절 헌금을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후에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늘 다른 방법으로 채우신다는 것을 말씀드리는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나를 목매이게 기달리는 샤샤 친구는 병원 정문앞 돌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보내신 퀵서비스의 병원비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같이 내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집사님은 옆에서 계속 전화가 오가는 것을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또 다른 추억은 캄보디아 애기 엄마가 출산이 가까워서 우리 교회 나오지도 않으면서도 그 쉼터를 향해 걸어온것입니다. 그리고 그 쉼터에 도착하자 마자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애기를 양변기에 빠트렸을 때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도 탯줄이 연결된 채로 우리 쉼터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동국대 병원이라 산모와 신생아를 데리고 입원을 시켰을 때 애기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병원측에서 입원을 시켰고 산모는 따로 병실로 갔습니다. 그때도 중환자실에 애기가 있었기에 병원비가 엄청 나왔습니다. 역시 늘 하루 하루 지내는 선교회에 시간을 맞추어서 하나님께서 배달을 시키셨습니다.
그런 추억의 이야기를 하며 네팔 사람 라이의 병실을 찾았습니다. 수술을 잘 맞치고 일반병실에서 누워 있는 라이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해 주었고 우리는 이런 환자를 섬기는 시간을 전도의 효과를 올릴수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입니다.
엘자 전도사님은 한국에 오기전에 홀리네이션스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리나와 로만 부부를 카자스탄의 기도원에서 만나서 들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우리 선교회에서 결혼을 시켜준 첫번째 커플인데 한국에서 결혼을 모든 비용을 내고 시켜주었다고 해서 그런곳이 다 있냐고 물었는데 한국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고 십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이달말에는 카자스탄에 가서 사역을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네팔의 라이를 기도하고 김금옥 집사님한테 가서 교통사고 이후 얼굴이 더 뽀얗게 예뻐진 모습을 보고 엘자 전도사님이 놀라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가장 치유를 완벽하게 하시는 우리를 치료하는 명의사이십니다. 김금옥집사님은 그동한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행하신 이야기들을 엘자전도사님에게 하면서 남편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다고 고백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