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24)
“율법과 은혜의법”
우리나라의 속담에 “세살적 버릇이 여든간다”라는 정말 무서운 경험의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을 분석하면 성경에서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살때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몸에 익힌다면 한 사람은 여든까지 좋은 인생의 여정을 갈것입니다. 한데 세살적에 그것을 몸에 익히지 않는다면 나쁜 버릇대로 살기에 인생을 망칠것입니다. 우리는 “제 버릇 개주냐?” 라고 하면서 한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어릴 때 자녀에게 들려 외우게 해서 좋은 습관을 살것을 성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신10:12-13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가르치심인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율법과는 상관이 없어서 은혜의 법은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않고 사는것으로 오해를 하면 참으로 불행한 길을 스스로 자초하게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많이 순종과 행함을 강조하신것을 묵상하지 않기에 우리는 은혜의 법은 제멋대로 사는것으로 착각하여 그렇게 손가락질 받는 교인들이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마7:24-27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우리의 신앙의 집이 반석위에 세우기 위해서는 듣고 행하는 사람이고 모래위에 세운 사람은 행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한데 잘못된 죄의 길을 가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가다가 그 결과 자업자득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그럴수가”라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지켜볼 때 전혀 하나님의 법과 관계없이 살아가서 그 마지막은 사망이라고 경고해준 것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가르침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요.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역사상 가장 힘들고 하나님께 매를 맞고 고난의 역사를 지낸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같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데서 왔다고 회개하며 그것을 잘 지키기 위하여 율법을 613 가지로 나누어 생활의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라”는 긍정적인 법이 248 개이며, “하지 마라”는 부정적인 법이 365 개라고 합니다. 이들은 우리 뼈가 우연일치로 248 개여서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면 온 몸이 날아갈듯이 기쁘고 지키지 않으면 뼈마디가 쑤시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일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지마라” 365 개를 하지 않을때는 일년 365 일이 피곤하고 힘들수 밖에 없다고 적용한다고 합니다. 엄청 고난의 매를 맞으며 깨달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에 이 613 가지 법을 비아냥 거리며 설명해 주면서 이것이 말이 되냐? 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런 율법아래 있지 않기에 그럴필요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100 독이 넘어가도록 삼십여년동안 묵상을 하다보니 신약성경에는 “성화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더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은혜의 법아래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인생에서 지켜 보았기에 우리 자신의 죄성을 늘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해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동기라도 잘라버리라고 눈을 뽑아버리거나 손을 잘라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났다고 가르쳐 주시고 실지 몸소 눈이나 손을 잘라버리는 것을 대신 몸을 바쳐 우리를 구원해 주신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의 법보다 더 한수 강화된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마5,6,7 장을 묵상하면 “옛사람에게 말한바……”이렇게 시작되면서 구약보다 한수 더 높은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라고 가르쳤지?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권한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3:44)”
우리 주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폐하는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셔서 하나님께 나아갈길을 열어주신것입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우리가 누리는 이 은혜의 법은 그렇게 값싸게 아무렇게나 생각할것이 아닌 우리 주님이 엄청난 대가를 대신 지불하신것입니다.
아이에게 교육을 할 때 세살부터 잘 가르치는 것을 강조하는 한국의 속담은 인생의 경험에서 나나오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어서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고 계신것입니다.
아이가 작은 일에 거짓말을 하거나 친구간에도 상처를 주거나 하는 일들을 할 때 바로 교정해 주고 습관이 되지 않으면 커갈수록 나쁜 거짓말이 몸에 배고 결국 별로 쓸만한 인물로 자라지 못합니다. 아이가 바르게 하기 위해서 늘 지켜보면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스스로 하는 성실성등을 몸에 배게 하려면 그것은 단순히 사교육만으로는 절대 안되는 교육입니다. 엄마가 교육을 시키지만 스스로 하도록 하는 교육을 시키는것이지 늘 “공부해” 잔소리하는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9 살 주연이는 어제는 전국 총회 어린이 영어 성경암송대회에서 은상을 탔습니다. 엄마와 딸과 같이 한몸이 되어 날마다 성장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기쁘고 박수를 쳐주며 응원하게 됩니다. 맨처음 4 살때 시편 23 편을 한국어와 영어로 암송를 시킬 때 큰 달력에다가 영어를 써주고 엄마가 한 단어씩 읽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 반복을 하고 외운 성경은 몇 년동안 수십장에 이릅니다. 이제는 혼자 암송을 스스로 하는데 아이는 TV 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일이 없을뿐더러 아침에 5 장 저녁에 5 장 성경을 스스로 읽습니다. 일어나는것도 스스로 하고 하루에 자신이 해야할일을 모두 스스로 합니다. 물론 사교육은 단 한번도 시킨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준 교육방법은 한 영혼을 지혜롭게 만들어주고 죄의 길로부터 보호해 주는데 교육의 순서를 바르게 하면 어떻까요? 부모들이 열정을 올리는 영어는 절로 잘할것이고 밖에 나가서 나쁜짓할것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입니다.
성화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른들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도 따라오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