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23)
왜 신약성도들은 성경 묵상과 지켜 순종하는데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역사의 모든 흐름을 보면서 이해가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으로 선택받았다는 특권으로 태어났지만 그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아주 특별한 고난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마 지구의 역사상 가장 고난을 극심하게 받는 사람들일것으로 보여집니다. 한데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국가를 통치할때는 오히려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철칙을 고수하며 종교적 겅건함 아래에서 자신들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종교적 경건함 아래에서 자신들을 가다듬을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유하고 강력한 왕이 통치하게 되거나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여지없이 이교숭배와 부패가 반복되어 나타났습니다. 독립적인 통치기구를 갖고 번영을 누릴때마다 기묘하게도 유대인들은 주면 민족의 종교에 이끌려 종교적으로 타락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 다윗의 모델을 보고 자라났고 자신도 일천번제를 드리고 그 누구도 누릴수 없는 축복을 누리던 솔로몬이 그 영화를 주신 하나님을 잊고 이방여인들의 꼬임에 넘어갔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직했겠습니까?
왕상11:4-5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반면 그들이 국가를 잃거나 외세의 지배를 받았을 때마다 그들은 좀 더 율법에 순종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적 경건성 아래에서 자신들을 가다듬을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디아스포라처럼 흐트러져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길을 율법을 가르쳐 주는 성경을 읽고 마음판에 새기고 자녀에게 전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반면 신약성도들은 일반 신도들에게는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일반인들이 읽을수 없는 책으로 성경을 잘 이해할수 있는 길은 성화를 보고 알라고 하여 초대 성당에 내부에는 천장이나 벽에 성화가 많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잘못 이해하면 이단이 될수도 있다고 하여 성경을 소지 하고 있다가 들키면 화형에 처한 시대도 있는 것을 역사책을 통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그후 성경이 우리 모두 손에 어디서나 볼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는 성경을 유대인들처럼 읽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것으로 지내오는데 익숙해 진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그런 말씀을 듣는것외에 “눈에서 떠나지 말고 마음판에 새기고” 라는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말씀이 무엇인지에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고 기도는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보다는 아쉬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기도는 하겠지요. 한데 말씀이 빠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바르게 기도하지 못하기에 응답을 늘 체험하지 못합니다. 조지뮬러의 그 놀라운 기도의 응답의 비결은 성경을 200 독했을뿐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기도와 그의 순종의 삶에 있는것입니다.
요즈음은 한국에 기도원에 전과 같이 많이 모이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기도를 하러들 갑니다. 재미있는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기도원에서 은혜받고 돌아서서
나오면서 신발 신으면서 서로 다투며 은혜 받은 것 다 쏟는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속에서 푹 빠져서 깊은 은혜의품안에 있던 사람이 신발 신으면서 서로 다투게 될까요?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지 감정에 휘둘리는 상태가 아닌데 잘못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차곡 차곡 다녀진 은혜는 그렇게 쉽게 쏟아지지 않습니다. 마치 풍선풍선 놓은 것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푹 꺼져 버립니다. 일생동안 부풀었다가 꺼졌다고 반복하다가 사라지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대로 순종을 한다고 하면 우리는 유대인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살아야 하는것이 정상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가족끼리 사랑하고 신앙을 철저히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므로 자녀에게 전수하고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꾸어주고 그 돈을 안갚은 사람이 없이 정직하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은 당연히 우리도 해야 할 일이고 하나 더 앞서가서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더 뛰어나게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네 동족끼리 철저하게 사랑해서 모르는 사람도 회당에 찾아와서 처음 만난다면 집으로 초대해서 먹여주고 재워준다면 우리는 동족에게 그렇게 하는것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해야 할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네끼리는 선민이라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세상 모든 민족에게 나의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유대교 신자들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아닌데 그들을 연구한 책도 특히 교육에 관한 책과 경제 역사에 그들이 등장하고 많이 쓰여진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한수 위로 그런 삶을 살면서 팔레스타인 폭격을 하는 유대인같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더 사랑의 능력이 삶으로 보여진다면 “그리스도인 그들이 알고 싶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성도의 삶”을 소개할 것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전혀 다른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우리 주님이 궁금해서 교회로 너도 나도 들어올것으로 기대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은 지금도 진행형으로 바뀔것입니다.
행4:32-3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런 놀라운 사건이 지금도 진행되기를 꿈을 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