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10)
로마는 세계를 재패한 것 같이 보였던 나라였습니다. 그 역사는 영원할 것 같이 보였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세운 나라는 영원한 강대국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파아 가도 - 로마의 가도((Via Appia, Appian Way) 는 로마제국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국이 정복한 땅에는 꼭 제일 먼저 로마식 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처럼 로마의가도는 현재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북아프리카, 영국, 프랑스, 터키, 시라아, 이스라엘 등 로마제국 곳곳에 널리퍼져 있습니다. 주 이유는 군단의 이동을 신속히 하려고 했다는데 있습니다. 로마 최고 전성기때 로마군은 5-60만 이였다고 합니다. 이정도의 규모로 그 넓은땅을 지켜낼수 있었던것은 잘 정비된 도로때문 이였습니다. 아피아가도는 로마의 켄소르(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BC 312년에 건설을 시작한 도로이며, 도로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로마와 카푸아 사이였으나 BC 240년경 브룬디시움(브린디시)까지 연장되었고 도로는 돌로 포장을 했는데 로마와 남이탈리아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의 간선도로이기도 하였으며, 오늘날도 일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그리스 ·이집트로 가려면 먼저 이 도로를 통과하여야만 하며. 아우구스투스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멸한 후 브룬디시움을 거쳐 이 도로로 로마에 개선하였습니다.
우선 깊이1~1.5m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판 다음에 최하층으로 30cm정도의 높이로 자갈을 깔고. 이렇게 한 목적은 2 가지인데. 1) 평야라 해도 평탄하지 않은지 표면을 완전히 평탄하게 고르기 위해. 2) 전체깊이 2m가까이나 되는 도로내부에 침투한 물이고 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자갈위에돌과 점토를섞어서 깔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인위적으로 잘게 부순 돌맹이들을 아치형으로깔고, 그위에 사방70cm 정도크기의 마름돌을 빈틈없이 끼면 이것으로 로마 가도가 완성됩니다. 너비는4m였고 그 양옆에 3m정도의 인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로와 인도의 사이에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잘빠지게 했고 곳곳마다 이정표도 있고 3~40km마다 말 교환소가 있고. 6~70km마다 여관이 있고 2~30km마다 음식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2,000년된 도로 '아피아가도'를 따라가다보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치던 베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할 당시인 쿼바디스교회가 AD 7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사도바울을 죽이고, 베드로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을때 교인들은 베드로를 구하고자 도망 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교인들의 권고가 너무나 간곡하여 베드로는 교인들이 내려주는 밧줄을 타고 성에서 내려와 쿼바디스라는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홍포를 입으신 예수님이 나타나 베드로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으며 베드로가 옷자락을 잡았을 때, 조용한 눈빛으로 베드로를 돌아보던 주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내가 버리고 온 로마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로마로 간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에 통곡을 했습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박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베드로는 잘못을 뉘우치고, 로마성으로 다시 돌아갔고 AD 71년 늦은 가을날, 주님을 따르던 베드로는 로마 바티칸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순교했습니다. 쿼바디스교회는 베드로 순교기념교회로 현재 아피아가도 옆에서 그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고 우뚝 솟아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는 들어서면서 바로 뒤쪽 가운데의 대리석에 새겨진 발자국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예수와 베드로가 만났을 때 남기었던 예수님의 발자국이라 전합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로마의 길은 위에서 보기에는 차들의 무게로 길이 쉬 망가질것 같지만 위쪽으로 보이는 돌 조각들이 아랫쪽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어서 어떠한 무게에도 쉽게 망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차가 다니는 이 길을 보면 도로 바닥이 매끈매끈하게 닳아있습니다. 2천년도 넘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이 작은 차로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 길이 바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로마의 자존심, 바로 "압비오"(Appio) 길이었습니다
아무도 로마가 막강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을 때 그 나라가 망할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운 나라외에 인간이 세운 나라는 영원한 강대국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된 본성이 그런 결과를 맺는 것을 역사학적인 평가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홍익희저 유태인 이야기” 책에서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농업과 전쟁을 통해 부국강별책을 도모했다. 자국의 농경지를 넓히는 것이 곧 부국의 길이요 정복지의 물자와 노예를 거두어 들이는 것 강경책으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농업이라는 기초산업과 생산자 단위는 가정이었고 주된 노동력은 노예였다. 당연히 노예확보를 위한 전쟁이 매우 중요한 국가 사업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빈번한 전쟁으로 그때마다 보병으로 출정된 자영 농민층의 피해는 커져만 갔다. 반면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하는 장군과 귀족들은 새로운 영지를 늘려가며 더욱 부유해졌다. 결국 로마의 충추적인 핵을 이루었던 자영 농민층은 점점 몰락해가고 봉건 영주의 세력은 점점 더 커져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로써 로마 사회를 지택해 주는 기반인 중산층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로마 경제릐 몰락을 재축한 또 다른 요인으로 사치문화를 들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은의 대량 유출을 일으킨 비단 사치가 문제였다. 중국은 비단 값을 주로 은으로 받았는데 이때 로마의 비단 열풍은 대단해서 그때까지 투박한 아마포와 면 그리고 양포만이 웃감의 전부라 생각한 로마 귀부인들은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은 황홀한 촉감, 안개처럼 흐느적거리를 유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