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7)
유럽에 가기전에도 계속 듣는 이야기가 유럽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럽 여러나라를 다니는 동안 내내 하루에도 몇십번씩 소매치기를 주의 하라고 이야기 해 주고 인솔자는 듣고도 조금만 방심하면 소매치기가 주위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것이었습니다. 에펠탑에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도 “에펠탑에 오오신 것 환영합니다” 혹은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문구가 쓰여있는 것이 아니고 “소매치기를 주의 하세요” 입니다. 여권이나 지갑이 들은 가방을 그때마다 여행객들은 한번씩 꽉 쥐었다가 무엇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면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이 석회질이 많아서 물대신 많이 마시는 맥주 그것도 아주 큰잔에 식사때 마다 나오는 거대한 맥주잔이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나하고 함께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유럽에서 들려주는 말대신 매번 성경공부를 할때마다 “성경을 매일 꼭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하세요” 입니다. 성경공부때 마다 안듣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신을 나타내는 특별계시가 성경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친밀해지고 가장 좋은 점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셨나를 알아가게 되는 것은 너무나 축복입니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돈이 적어서 무엇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사랑할줄 모르기에 불행해지는데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내 속에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랑에 고개가 수그려집니다. 내가 선하고 잘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성경의 거울속으로 깊히 들어가봐야 알게 되십니다. 성경의 수많은 죄를 지은 추한 이야기들은 바로 나의 모습인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사도바울의 이 고백의 말씀을 같이 고백할것입니다.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첫번째 “오래 참음”부터 조금씩 발을 내딛게 됩니다. 우울증에 걸려서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고통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내 말좀 들어주세요!!” 라고 울부짖습니다. 나는 이런 영혼들의 외침을 듣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듣다 보니 휴대폰을 대화에 “무제한”으로 하여 요금이 많이 나옵니다.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서도 상담을 하기 원하면 2 시간 내지 6 시간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해어진 후에도 전화를 하여 같은 고통의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휴대폰으로 30 분 내지 한시간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에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듣는 것이 영혼이 소생하게 하는 일입니다.
한 자매는 사십대 중반인데 엄마는 80 대 중반으로 엄마를 치료 해드리면서 엄마가 돌아가실까봐 늘 울면서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전화로 엄마의 기저귀를 갈아드렸는데 피부가 오늘은 어떤 상태이고 소화는 어떤 상태이고 자세히 흐느껴 가면서 이야기를 하며 엄마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부탁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기도를 같이 해 줄 사람이 없다는것입니다. “권사님, 지금 통화 할수 있어요?” 라고 문자를 보내면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듣기 때문에 무제한의 휴대폰을 사용해야 상대방이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우선으로 여기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어린 아기하고는 어린 아이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하는 사랑의 대화는 참으로 여러가지 입니다. 딸이 4 살 5 살 이런 나이때 우리 딸은 봉숭아꽃으로 물을 들이는 것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우리집에는 봉숭아를 마당에 심어서 약국에서 백반을 사다가 찌어서 여름 내내 마루에서 봉숭아 물을 들이면서 대화를 나누던 추억이 있습니다. 손톱이 조금만 자라도 또 해 달라고 해서 수시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루는 다른곳에 데리고 갔는데 그날 밤에 집에 돌아오면 봉숭아 물을 들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천둥번개 치며 비가 와서 마당으로 내려가기 힘들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사랑을 전하기 위해 아주 대형 우산을 같이 쓰고 마당으로 나가서 봉숭아를 따서 찌어서 손톱에 물을 들여 주어서 아주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삼삼합니다.
그 어린 딸이 지금 엄마가 되어 자신의 나이 만한 딸을 두고 며칠전에는 민서에게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다고 해서 어디서 꽃을 구했냐고 물으니 요새는 가루로 판다는것입니다. 그 가루로 하면 전에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손톱을 헝겁으로 싸매지도 않고 15 분이면 된다는것입니다. 우리 민서는 손톱하고 발톱에 드린 것을 자랑하며 내게 보여 주어서 전에 같이 어린 딸과 지냈던 사랑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갖지 못하고 자란 수많은 영혼들이 사랑이 배고파서 우울증에 걸려서 사랑받기 원합니다. 엊그제 박미라집사님이 보내준 글이 마음에 와서 감동이 되어 여기에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삶속에서
희생 헌신을 통하여 사랑과 기쁨 희망을 줄수있는 비누처럼 살아갈수 있는 모든사람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누처럼 삽시다. '비누'는 사용할 때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 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더러움을 없애줍니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희생을 통하여
사회에 공헌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습니다.”
이는 미국의 백화점왕 '워너 메이커'가 한 말
입니다. 사람의 '삶'중
희생하는 '삶' 만큼 숭고한 '삶'은 없습니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 되는 인간 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 우정과, 동료애, 전우애가
그렇습니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
하기 어려운 삶입니다.
사랑을 받고 싶으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건
상대의 마음과 옷에
묻은 때를 깨끗하게
세탁하여 화려하게
해주고, 몸과 마음에
찌든 때를 씻어 향기가
나게 해주어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주게 됩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녹아
(작아지고 녹아지는)
'비누'가 되면 됩니다.
다만 마른 비누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됩니다.
물이라는 사랑과 헌신이 녹아들어야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입니다. 즐겁고 건강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