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 섬기는교회의 말씀잔치(3)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 늘 기쁨이 넘쳐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이 30 년전에 고등부 주일학교 제자인 목사님과 26 년전에 대학부 제자인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에 말씀잔치에 간다고 하니 “어떻게 오랜 세월동안 연락이 끊기지 않았어요?” 였습니다. 그 질문에 답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너도 나도 이 질문을 많이 하기에 답변을 해 드립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은 얼마나 강력한지요!!! 우리가 대학부 지체로 만난 수십명은 1988 년 한국에 올림픽을 열었던 해였습니다. 그때 만난 지체들은 서로 이름만 알고 연락을 계속 하는것뿐 아니라 우리는 서로 가족처럼 “형, 동생, 언니”라는 명칭을 부르며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이 지체들은 “박순탁목사님 내외에게 안부전해 주세요” 라고들 서로 인사를 했고 그후에 소식을 궁금해 하며 갔다 온후에 서로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성령이 하하나되 하신 것”은 대학부를 맡아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가 그후 나는 외국에 다시 나가서 1998 년에 귀국을 하였으면 서로 소식을 알수가 없을만큼의 시간이 지났는데 일년에 한번씩 한한국 왔을 때 우리 지체들은 모두 소식을 듣고 모이곤 하였습니다.
대학부외에도 그리스도안에서 만나면 늘 성령이 하나되게 하셔서 우리에게는 만남은 있어도 헤어짐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주님 주시는 충만한 기쁨이 어떠한 극심한 어려움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공급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려울때 우리는 언제나 앞장서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수가 있었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가운데서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선포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에 섬기는 교회에서 주일을 맞이한 날은 어머니 주일로 지켰는데 박순탁목사님, 이하영사모님은 특별한 카드를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마마, 저희들이 어렸을때도, 그리고 지금도, 한국에 있있을 때 미국에 있을때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사랑해 주시고 품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늘 애쓰시는 우리 마마를 위해 저희도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강건하세요. 해피 마더스 데이!” 그리고 더 감동스러운 편지를 떠나는 날 받았습니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강사료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만 받는데 사모님이 편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사모님은 병원에서 밤에 근무하는데 오버타임을 병원에서 잘 주지 않는데 주님이 길을 열으셨다고 오버타임한 것을 내게 주는것이었습니다. 절대 받을수 없다고 하니 “왜 현기, 지혜의 돈은 받고 영적인 자녀가 주주는 것 받지 않느냐?”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것입니다. 만약 받지 않으면 삐칠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니 네팔에서 이미 한 개 교회는 건축을 하였는데 다른 두개 슬럼가의 교회의 장소를 다른데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그곳에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기에 장마가 지면 너무나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힘들게 오버타임을 밤잠을 안자면서 번 돈을 그곳에 보내려고 합니다. 값지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 너무나 힘들게 눈이 잠이 못자서 충혈이 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에 뉴욕을 여러 번 방문하였는데 같이 간 일행을 위해서 하루 뉴욕 관광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거리에서 전에 하나님께서 매순간 응답으로 그곳을 갈수 있었던 시간을 회상했습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십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좀더 쉽게 와 닿을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1986 년부터 시작된 선교 사역중에 가장 큰 염려는 자녀에 관한것이었습니다. 내가 계획하거나 꿈을 꾼 것이 아닌데 남편의 해외 근무로 인하여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터네셔날 스쿨을 다녔습니다. 그러기에 대학을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는 도중에 다른곳으로 발령이 날까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나는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청지기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에 고등학교까지는 그런 신앙교육을 집에서 함께 있으면서 시키기를 소원했습니다. 삼년이면 보통 한곳에서 근무를 마치고 이동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다음 홍콩에서 말레이시아로 가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슬림 나라에서 선교사들은 비자를 받을 수가 없는데 남편의 직장을 그곳으로 이동시켜 주셔서 가게 하셨고 아들은 미국으로 대학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IMF 라는 장벽속에서도 매 순간 인도하셨고 선교를 하도록 하시면서 매일 신선한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때 대학을 가기 위해서 아들과 같이 뉴욕에서 로드 아일랜드 에 있는 브라운 대학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박순탁목사님댁에 며칠 묵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자유의 여신상앞에서 아들과 나를 위해서 찍어준 사진이 지금도 안방에 걸려있고 아들과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년후에 딸이 다시 뉴욕에서 대학을 가게 되어 목사님 가정에서 어린 딸 진이와 한방에서 지냈고 진이는 어느새 커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진이는 우리 딸이 함께 지내니까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번에 가서 보니 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도 한국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하도록 교육을 받은 것을 보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보통 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못하는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자녀의 학비를 주셨을뿐 아니라 외국인 신학생을 공부시키는 22 명에게도 동일하게 만나를 내려주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구할 때 다윗왕이 왜 그런 고백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시21: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다윗왕은 우리에게 평생에 기도할 이유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116:1-2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나는 맨하탄의 거리를 걸으면서 매 걸음 인도하신 하나님을 회상하며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