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144)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이 행하시는 대로 행할 것을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요일2:5-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왜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 갈등을 갖게 되고 관계가 복잡하고 마음에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까요? 어제 뉴스에 우리나라에 인천 앞바다에서 제주도로 가려던 여객선이 영화 타이타닉의 장면을 재연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수확여행 가려고 집을 나섰을 때 집에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다녀 오지 못할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한 부모나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끔찍한 대형사고가 인천 앞바다에서 터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 헤어지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그렇게 미워하고 갈등하고 원수처럼 살아갈 이야기 있을까요?
모든 상처의 주범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 에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교도소에 디모데는 하나님이 원래 천재적인 두뇌를 주신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그가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패스하고 학사고시를 독학으로 낮에 노역을 하면서 국문학 학사를 취득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디모데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일등을 했어도 계모가 때리고 이복형제들도 그를 매맞게 하고 하니까 그의 천재성은 다 소멸이 되고 나쁜 길로 인도하여 교도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은바 되었을 때 놀라운 그의 깊은 속에 사장되었던 천재성이 다시 두각을 나타내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은 한 분이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디모데 형제님이시군요....그곳에서 학사 취득까지 하시고요~~항상심과 평정심을 잃지 않으시고 매일 매일 사랑차를 드시는 기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분은 하나님의 따뜻한 햇살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모습이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꾸며낸 이야기 같은,,,,그분을 통해서 많은걸 느끼고, 배움에 정말 존경하실 만한 분입니다. 그 배후에는 든든한 권사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이끔이 있었기에 기적과 같은 일이군요.......하루에도 세상적인 쓸데없는 생각들로 하루를 소비하는 저에겐 머리가 띵~ 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곳곳에 있음을 정말 감사 드립니다.”
“사랑만이 기적을 남깁니다”
자녀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 과거에 당신이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했는가를 기억해보면 마음을 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도 아마 우리 자신보다 우리로 인하여 더 많은 마음을 애타했을 것입니다. 배우자간에도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눈을 감고 덮어주고 좋은 점만 바라보고 그 입장에서 이해하는 연습을 한다면 더욱 좋은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의 좋은 글을 한 분이 보내주신 것을 함께 나눕니다.
-고난 주간 의미-
고난 주간이 금식이나 금욕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한 두 끼니의 밥이나 굶으라는 게 아닙니다.
◆비판을 금식하고 칭찬의 만찬을 즐기라.
◆혈기를 금식하고 온유함의 만찬을 즐기라.
◆질투를 금식하고 사랑의 만찬을 즐기라.
◆거짓을 금식하고 진실의 만찬을 즐기라.
◆자기 핑계를 금식하고 책임의 만찬을 즐기라.
◆불만을 금식하고 감사의 만찬을 즐기라.
◆이기심을 금식하고 섬김의 만찬을 즐기라.
◆의심을 금식하고 믿음의 만찬을 즐기라.
우리는 이걸 너무 오래 동안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먹거리 같은 것의 양이나 기도와 헌금의 금액이 아니라 진실한 삶의 질과 사랑의 진면목의 문제입니다.
먹는 것, 가진 것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거나 문제 삼지 맙시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은 비인간적인 것과 비인격적인 것을 먼저 금식해야 합니다.
그러한 성찰과 자각으로부터 근본적인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고난의 참 의미를 찾는 고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