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133)
“다윗왕의 기도와 사울왕의 기도”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선포한 다윗왕의 모습은 여호와를 항상 모시고 있기에 그는 범사에 자신의 판단대로 하지 않고 묻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큰 교훈이 됩니다. 사무엘하 5:17-25에 항상 이스라엘의 강적 블레셋은 두 번이나 침공을 해왔습니다. 두번 다 르바임 골짜기에 쳐들어왔을 때 다윗은 자신의 능력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때 마다 하나님께 의견을 묻습니다. “삼하5:19-20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 이라 부르니라”
이미 한번 승리했는데 다시 쳐들어왔을 때 그것도 같은 장소 르바임 골짜기 라고 한다면 보통 사람들이면 그냥 나가서 전투를 벌릴 것인데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삼하5:23 다윗이 여호와께 무자온대” 그는 두 번다 승리를 했고 그의 모습은 강한 왕으로 블레셋에게 보였을 것입니다.
한데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되었던 부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였을 때 승리로 끝나면 좋은데 사울의 추격을 받고 있던 중에 그일라 사람의 어려운 소식을 전해 듣고 그일라 주민을 구했을때의 모습은 오히려 사울왕에게 자신의 숨겨진 장소가 드러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삼상 23 장은 그가 사울왕을 피해 숨어 있을 때 그일라가 불레셋 사람에게 타작마당을 탈취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도 삼상23:2 절에 하나님의 의견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일라를 구원구원하라 하셨을 때 다윗 주위에 사람들은 상황이 그들을 도울 상황이냐고 반대 의견을 내어 놓습니다. “삼상23: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은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다시한번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삼상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순종하였고 어려움에 있는 그일라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은혜를 기억하기 보다는 사울을 무서워해서 다윗왕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제보하고 배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는 다윗을 사울이 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삼상23:10-14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의견을 묻고 따라갈 때 어려운 일을 만난다면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을 하며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이런 경험들을 가끔 하게 되는데 한번은 네팔에 교회 건축을 한다고 건축헌금을 송금했습니다. 남편이 은행에 근무하면서 담당직원에게 정식으로 나라의 법을 준수하며 송금할 것을 부탁했는데 괜찮다고 담당직원이 이야기 한 부분이 행정적인 면에서 외환관리법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슈랜드라목사님이 이곳에서 공부한 학위 증명서와 사유서를 써서 보내고 한동안 곤역을 치룬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에서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추방을 당해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듯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도 그렇게 순종하며 따라가야 하기에 지금까지 왔습니다.
다윗과 대조적으로 사울은 똑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아니었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않았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쳐 달라고 쳥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상10:13-14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에 관한 엄청난 교훈을 줍니다. 인생을 오래 살면서 더 나이가 어렸을때는 “달변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의 기도는 아주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오래 기도하고 다른 사람 따라 할 수도 없을 만큼 “달변의 기도”를 했는데 그 사람의 기도에 어떤 열매가 없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근거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그 응답이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너무나 넘치기에 최고의 능력의 기도는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을 많이 해 주시는 것에 달려있지 결코 신접한 여인 같은 사람이나 달변의 기도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왜 이렇게 시편에 고백을 했는지 증명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시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선교회의 매 순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이야기는 그야말로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그 수를 셀 수도 없었어요”라고 사실의 행한 것들을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선교회는 매 순간 주께서 직접 행하시는 일들은 경이롭습니다. 올가전도사님 네명의 가족이 이미 선교회를 떠나서 러시아에서 사역한지 거의 십년이 되어서 재충전 받으로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서로 교제를 하고 있는 사이가 아닌 몽골에 나라목사님이 남편 마그나이목사님이 재충전 받도록 한국에 오기를 원하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 시간에 윤권사님은 러시아 다른 지역에 신학교를 마친 안드래이전도사님도 와서 재충전 받기를 원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에 졸라 전도사님은 학업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비행기 값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매달 세계를 향하여 우리가 지출할 많은 경비를 제하고도 이 모든 것이 다 채워 졌습니다. 여전히 구걸이나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의 고백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찬양하고 행진합니다. 경이로운것은 이 모든 것을 지출할 때 쌓아 놓은 것도 없고 하루 하루 만나를 받아서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정확하시고 우리는 그저 깜짝 놀라며 기뻐할 뿐입니다. 계산을 해 보면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것을 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채우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의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넘치는 응답은 개인의 삶에도 동일하고 신약에 바울도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다윗의 이름은 성경에 880 번 기록이 되어 있어서 한 개인으로서 가장 많이 기록된 이름인 것 같습니다. 신앙이란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인지 시편에서도 수 많은 가르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모델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왜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인지를 보여 주셔서 감사드릴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