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66)
성경에는 수 많은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께서 인생의 여정에서 함께 하신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은 과거의 책 속에 이야기 이고 현실에는 기적은 더 이상 어리석은 이야기이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을 단순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믿기보다는 사람을 찾아 다니고 그들의 감정에 호소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에 해골같이 뼈가 앙상하게 마르고 굶어 죽어가는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가 조금만 후원하면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사연을 보여 주며 계좌 번호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며 동정을 자아냅니다. 아니면 제삼세계의 쓰레기 더미 위에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들에 손길을 구하는 영상이나 편지 등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명의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그들을 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할 때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어(마6:8)” 라는 주님의 말씀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헛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중국에서 장애우등을 섬기며 자신은 다리 뼈까지 금이 가서 다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털어서 그들을 도운 선교사님은 단 한번도 그런 장애우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거나 자신의 필요를 사람에게 구한적이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장서서 텔레파시를 보내시고 또 그곳에 후원할 돈도 마련하셔서 그분이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시간까지 맞추어서 이미 준비하고 그분을 세우신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다른 한 분의 선교사님 역시 시리아 난민들이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텐트를 치고 담요도 식품도 난로도 없는 사진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라는 사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보통 그런 기도는 간접적으로 “돈이 필요한 것을 기도라는 단어”로 표현을 할 뿐입니다.
어제 더 기쁘고 놀란 것은 우리가 일차로 그곳에 필요를 서둘러서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 헌금이 시리아 난민의 긴급 상황에 필요한 것을 알고 더 보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고 이틀 만에 처음보다 더 많은 금액을 세분을 통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에 한 분도 처음 우리 선교회에 헌금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도 헌금을 보내기 전에 문자를 이영선집사님을 통해서 듣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고 우리 선교회에 기쁘게 헌금을 보내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이 시리아 난민에게 전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필요한데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기쁨과 경이로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는 특권을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실재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두 지휘를 하는 대로 따라가면 우리 모두 기쁘기만 하는데 사람의 방법대로 하기에 그렇게 피곤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방법을 두 분의 선교사님은 전혀 쓰지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자신의 것은 이미 모두 하나님 앞에 드려진 상태입니다. 먼저 펌프에 물을 붓지 않은 사람에게는 물을 부어야 하는 과정이 빠져 있기에 펌프는 작동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시리아 난민을 돌보는 선교사님은 다른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면서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을 마중 물로 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례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비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호소하고 받아서 하는 데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단지 선교의 사역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하는 사업이나 모든 것에 해당이 됩니다.
우리 집에 070 전화기가 며칠 동안 고장이 나 있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기가 멀쩡한 것 같은데 전화번호를 돌리려고 하면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고장 신고를 하니 직원이 나와서 오 분 만에 고쳤습니다. 고장 원인은 얼마 전에 그 전화기를 떨어트리면서 속에 있는 받테리 3 개를 떨어트렸는데 그 중 두개는 보이는데 한 개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이즈의 받테리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고장이 났으면 그 받데리를 넣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한동안 전화가 되다가 안되었기에 원인이 그 받데리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한동안 되었던 것은 전에 충전한 것이 남아 있어서였고 그 충전한 것이 다 사용되자 고장이 난 것이었습니다. KT 직원은 우리 전화기 뒤를 열더니 그 사이에 다른 받받테리 있는 것을 보고 먼저 받테리를 찾아오라고 하여 그 원래의 받테리를 끼니 단번에 전화기는 멀쩡해졌습니다.
그것을 지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기도하고 행하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똑 같이 기도를 하고 모든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잘못된 받데리를 끼어 사용할 때 붙통 전화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늘 앞장서서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놀라는 것이 우리의 일이지 우리가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하시는 일에 통로가 되는 특권을 누리며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똑 같은 불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다윗 왕은 승리를 하고 사울 왕은 패배를 한 원인이 무엇일까를 성경에서 묵상하면 그 비법을 바로 터득할 것입니다. 처음 사울 왕은 가문이나 생긴 외모나 모든 것이 다윗 왕보다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아버지도 유력한 자라고 성경은 쓰여 있습니다. 삼상9:1-2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그런 좋은 가문의 아들이고 준수하게 생기고 키도 컸던 사울 왕과 다윗 왕의 걸어가는 길은 너무나 대조적이고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다윗 왕은 늘 “여호와께 묻되”라는 기록이 있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에 그의 기록에는 영광스러운 기록이 계속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이 하하나님께 물을 때 늘 지시해 주셨고 다윗 왕은 순종하였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에 하시니라” 뿐만 아니라 두 가문을 이렇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삼하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결국은 사울왕이 자신과 가문까지 망한 이유는 그는 먼저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듣지 않았기에 듣지 못한 말씀은 바르게 순종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결과를 자초한 것입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묵상해야 하고 그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순종할 때 진정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승리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