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54)
청지기의 삶(27)
진짜 믿는 믿음에 관한 글이 잘 찾아볼 수가 없어서 내가 경험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짜 믿는 살아있는 믿음이지 우리의 감정이나 사람의 말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 우리 삶의 근거이며(롬1:16-17)
믿음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히11:6)
믿음은 →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마 21:22)
믿음은 →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요일5:4)
우리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된 아브라함이 현장 훈련에서 믿음의 훈련을 얼마나 오랫동안 받았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훈련 받기를 기쁘게 내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2:21-23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신약성경만 읽고 해석을 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찬하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며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믿음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삭을 드릴 수 있는 믿음까지 갈 때, 하나님의 언약을 드디어 믿을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믿음의 점수에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알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질것입니다. 창 12 장부터 22 장까지 읽고 깊게 묵상을 하면서 우리도 믿음의 “경험이라는 교사”앞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처음 창세기 12 장 1-9 절은 믿음의 훈련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좋게 평가점수를 히브리서에서 주고 있습니다. 히11:8-1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그런 사람이 창세기 12 장이 끝나기도 전에 믿음의 점수에서 낙제점수를 받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가 갈 바를 모르고 순종을 하고 갔을 때 우리는 보통 기대하는 것이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깊이 묵상할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처럼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이 펼쳐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12:10 절에 보면 하필이면 그 땅에 기근이 들었을까요? 그것도 기근이 약한 정도가 아니고 심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애굽은 기근이 들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이 아니고 그곳에 가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가르침을 잘 보면 그는 그곳에 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 31: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기근이 심해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것이 믿음의 훈련인데 그는 처음 갈 바를 모르고 자신의 고향을 떠날 때는 믿음의 순종을 잘했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행동이 아니었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험에 처할 뻔 하여 누이라고 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바로의 궁으로 아내가 끌려 들어간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번만 사라가 이런 고통을 겪는 것도 모자라서 창세기 20 장에 누이라고 하는 같은 실수를 또 저지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기까지 많은 실수와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선뜻 “나는 믿어요, 아멘 입니다” 라고 입으로만 고백을 해서는 아무 결과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스타일로 말씀하신다면 창12 앞부분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셨을 것이고 후반부에서는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이 아비 본토 땅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닌 놀라운 믿음인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할 때 그것을 어떻게 믿음으로 해석을 할 수 있을지요? 한데 믿음의 점수는 정말 그런 상황에서 가름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인데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한번 적용을 해 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13 장이나 14 장에서 볼 때 그는 다시 자기의 조카 롯에게 대하는 모습은 멋진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15 장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다시 확인할 때 그의 대답은 여전히 믿음의 미달 점수인 것을 보게 됩니다. 창15:1-2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창 16 장에서 사라의 믿음의 없는 행위는 그 가정에 하갈이라는 여종을 통하여 역시 믿음의 미달되는 행위를 보이게 됩니다.
그런 모든 실수 가운데서도 여전히 아브라함의 가정은 믿음의 훈련을 계속 했고 하나님의 훈련의 통과되는 선포를 듣게 되었습니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러나 그는 드디어 신약성경에도 그를 믿음의 계보에 올리셔서 히 11 장에 믿음의 선진들의 소개에서 등장하며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함을 받았으니 왜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는 고백이 나왔는지를 믿음의 훈련을 받아봐야 자신의 점수를 알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의 믿음은 현재 어디쯤 와 있을까요? 내 눈앞에 기근이 심하다 할지라도 요동하지 않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지요? 하나님은 하늘에 별 딸의 모래를 계속 보여주며 그분의 언약을 굳건히 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믿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