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45)
청지기의 삶(18)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노라면 또 다른 청지기가 줄을 서서 행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국에 최화전도사님의 간증을 직접 통해서 보겠습니다.
“제가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 에 들어가게 된 것부터가 저에겐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선교회의 다른 분들도 아마 거의 모르고 계실 겁니다. 제가 회사생활 하다가 기도응답으로 서울신학대학원에 가게 됐어요. 일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좋고 신학도 공부하고 싶은데, 저의 어머니가 장기환자셔서 계속 병원신세를 져야 하기에 전 돈을 벌어서 가정에 보태야 되는 입장이라 유학경비를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조건은 전혀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만약 내가 신학 공부하는 길을 열어주시려면 학비 생활비 모두 마련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돈을 벌었지만 대학교 금방 졸업하고 취직한 터라 월급도 얼마 안됐고 거기다 엄마 병원비에 동생 학비 생활비까지 제가 감당하고 있어서 월급 타는 즉시로 돈이 제 주머니에 얼마 남지 않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신학을 한다면 초기에만 생활비가 해결이 돼도 제가 정착해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니까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비자 받을 때부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우리 학교 연변과기대가 연변과학기술학원으로 돼있어서 서울신대의 어떤 교수님이 학교 이름이 왜 학원이냐고, 정식 대학교 과정이 아니지 않냐고, 하시면서 국가에서 승인하는 4년제 대학이라는 증명을 떼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 그때 취직해서 산동성 연태에 있었고 우리 학교는 연변에 있는데 그 증명을 어디서 어떻게 떼야 되는지도 전 몰랐습니다. 그런 연고로 주님이 이 상황에서도 비자 나오게 해주시면 가는 것이고 아니면 뜻이 아닌 가보다 하고 그냥 회사생활하기로 마음먹고 증명 떼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그리곤 여전히 회사생활 열심히 하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 뒤에 학교에 입학하라는 통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증명도 안 떼갔는데 입학허가가 떨어진걸 보면 주님께서 준비하고 계시구나 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그때까진 학비 생활비는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 얼마 지나서 이기열 선교사님께서 전화 오셔서 제가 출석하게 될 한국의 큰 교회에서 학비 생활비를 다 후원해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전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비자가 안 나온다고 했을 때 이기열 선교사님은 기도원 가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선교사님의 금식기도가 하늘보좌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여 저의 학교생활은 은혜가운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들어가기 전에 저의 지금 남편이 저한테 생활비 얼마를 줬었습니다. 그땐 결혼하기 전이라 돈을 함부로 받기가 그래서 처음에 거절했었습니다. 한국가면 학비 생활비 다 생기는데 돈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좀 가지고 가라 해서 100만원이 좀 넘는 돈을 받아가지고 갔습니다. 정말 그때 그 돈을 안 가지고 갔었으면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한국에 갔는데 제가 믿었던 바와는 달리 그 교회에서는 생활비가 전혀 지급이 안됐거든요. 그렇다고 누굴 찾아가서 왜 준다던 생활비 안 주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그렇게 2학기가 거의 지나갈 때쯤 제가 그 교회에 갔는데 어떤 장로님이 절 보시더니 최화 아니냐고, 생활비 잘 받아쓰고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전 그분을 모르는데 그분은 절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분의 말씀 들어보니까 그분이 저한테 지급하라고 한 달에 15만원씩 헌금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잘 받아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못 받았냐고 묻길래 전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하면서 장로님께서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알아봐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교회 사무실 쪽으로 가셨습니다. 그후로 지금까지도 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
그 말 듣고 학교 와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행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돌려놓으셔서 15만원 받게 해달라고….참 제 생각이 너무 제한적이었고 생각이 너무 작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엔 현실을 초월해서 구할 줄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 15만원은 저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홀리네이션스 선교회 후원으로 공부하고 있는 몽골에 지금은 목사님으로 사역하는 나라언니가 저보고 저녁에 같이 선교회로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전 그때 이기열 선교사님이 김상숙 권사님께 저에 대해 말씀 드린 것도 몰랐었습니다. 제가 집도 돌봐야 하는 상황인데 돈도 못 버는데다 생활비도 없이 지내는 게 선교사님께서 여간 마음에 쓰였나 봅니다. 그래서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권사님께 전화로 그렇게 말씀 드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선교사님은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꼭 기도로 길을 깔아놓으시고 진행하셨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주님이 마음을 움직이셨는데 통했는지 권사님은 절 학생으로 받아주셨고 전 15만원이 아닌 그것의 3배도 넘는 50만원을 생활비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난 정말 마음도 작고 생각도 작지만 하나님은 너무 크시구나 하는 사실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난 15만원을 붙잡고 구했는데 하나님은 50만원을 주셨고, 50만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교회에 있으면서 돈으론 살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을 보고 따라 배우고 싶은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결혼식도 시켜 주었습니다. 그 동안의 일까지 다 쓰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기로 하고 바로 중국으로 돌아간 후의 이야기를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교회에 학생으로 후원을 받으며 학교생활 무사히 마치고 2010년에 전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전 학교를 무사히 마쳤는데 저의 가정엔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그 동안 벌어놓았던 얼마의 재산을 주식으로 몽땅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된 것입니다. 마음도 참 너그럽고 성격도 좋았는데 한번 곤두박질을 치고 나니 사람이 성격까지 완전 괴팍하게 변해있었습니다. 그런 실패한 모습으로는 중국에 들어오기 싫다고 제가 들어올 때 남편은 여전히 한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제가 들어오고 거의 반년 정도 지난 다음에 남편도 귀국했는데 진짜 비행기표 외에는 주머니에 돈 하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는 하고 들어왔는지라 마음은 많이 차분해 보였는데 이제부터 뭘 해서 돈을 벌어야 되냐가 참 문제였습니다. 전에는 공인이 600여명 되는 봉제공장의 중국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참 많이 누리면서 살았는데 몇 년 사이에 모든걸 다 날리고 0이 아닌, 빚까지 졌으니 마이너스에서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참 막연했습니다. 남편은 취직을 알아봤지만 40대에 새로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분과 연결이 돼서 남편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속옷을 오다 받아서 중국 공장에서 생산을 해서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남편의 일 욕구를 회복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다시 일에 뛰어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수입도 있게 되었고 남편의 마음도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전 중국에 들어와서 교회에서 청년 부를 맡아 하다가 얼마 후에 가정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신학교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 월급이 15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땐 남편도 일을 금방 시작했던 차라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서 선교회에서 후원하는 생활비를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후에 수입이 좀 원래보다 많아져서 빚도 아직 다 갚지 못했지만 그래도 생활이 원래보다는 많이 좋아졌으니 후원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분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과 정력과 재물을 들여서 봉사하는데 저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거든요. 물론 물질의 양은 비기지도 못하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드리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여 작년에 김상숙권사님께 메일로 저한테 보내는 후원금으로 대신 더 필요한 곳에 후원을 하고 저한텐 보내지 말아달라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전 제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양보한 게 아니고 원래부터 제가 생각도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홀리네이션스를 통해서 저에게 부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기열 선교사님을 제일 처음 만났던 지라 모든 선교사들이 다 그렇게 헌신되어 있는줄 알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동안은 우리 선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대부분의 선교회도 아마 비슷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그 생각들이 많이 깨지게 됨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청년부를 맡았던 교회도 운남성의 빈곤한 지역을 선교한다고 하면서 그 지역의 아이들, 특히 허름하고 때가 닥지닥지 붙은 옷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그 아이들의 사진을 한국에 미국에 열심히 보내면서 후원금을 모으는걸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그냥 평신도로 다니는 게 아니고 한 직분을 가지고 있게 되니까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 보고 싶지 않은 것들도 너무 많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걸 생각의 차이라고 넘겨짚을 수도 있겠지만 그 벽을 넘기가 스스로 좀 힘들었고 마음에 많은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많은걸 깨닫고 배우게 되었죠.
후에 어떤 한국 선교사님을 만나게 됐는데 신학교에서 사례비가 거의 없는 것을 알고 저한테 어디서 후원 받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없다고 말씀 드렸더니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귀국할 때 보통 후원 처 몇 군데는 확정 지어놓고 돌아오던데 난 왜 그렇게 안 했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원래 후원 받던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 받는다고, 후원하던 곳이 상황이 어려워져서 못 받는 게 아니고 제가 안 받겠다고 해서 후원이 없는 거라고 하니까 저보다 더 아쉬워하는 것 같았어요. 많이 받아서 중국 와서 많이 쓰면 될걸 하시면서……
생각의 차이가 참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으면 좋은 생각을 물려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기열 선교사님을 통해서, 그리고 선교회를 통해서 진짜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의 생각을 전수받게 된걸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었는데 저한텐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나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걸음마를 떼면서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마음에 버려야 할 생각들이 많고 사랑으로 더 채워야 하고 성격상 모가 난 부분도 많은데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 변화되어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의 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너무너무 현실에 만족한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불평 불만이 내 입술에서 단절된진 좀 된 것 같습니다. 현실이 만족할만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만족은 배우는 것이고 선택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올해엔 예쁜 딸을 허락하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영혼, 너무 감사하고 가슴 벅찬 우리 애기 …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하나님께 꾸중 듣지 않는 청지기가 되고 싶어서 오늘도 난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하나님께 지혜 구하면서 우리 애기에게 열심을 다해 사랑을 퍼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