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34)
청지기의 삶(7)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청지기의 삶은 아버지가 우리가 아버지의 경제원칙을 따라 했을 때 다시 후히 누리고 넘치도록 안겨주기에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는 삶입니다. 조지뮬러는 독일사람으로 영국에서 고아들을 만명을 돌아보았고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아버지께 받아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200 명의 선교사도 후원하였습니다. 그런 모델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한 역사를 우리도 그 원칙을 따라갈 때 일어납니다. 단지 단계별로 그릇만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앞서 행하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경이로움을 감탄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청지기의 특권입니다. 최초의 선교사인 사도바울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한다면 우리 모두도 그렇게 살수가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단지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러한 상속자의 특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 선교회는 열 방을 후원하고 쉼터를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하다 보면 한 달에 몇 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지불을 마치고 곧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배고픈 지역에 고아들을 도시에 있는 고아도 아니고 그 나라에 지방에 있는 고아원을 지원하기 위하여 고석만 선교사님이 다시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즉시 이백만 원을 다시 고아들을 위하여 송금하였는데 이 삼일 사이에 백육십만 원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통하여 공급받게 되어 모두 360 만원이 고아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세 명이 각자 저금한 돈 중에서 각각 십만 원씩 합계 삼십만 원을 선교회로 보내왔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지금 캐나다 출장인데 그분의 남편이 고아들을 위하여 보내고 싶어 한다고 연락이 오더니 남편 분이 또 삼십만 원을 보내왔고 다음날 캐나다에 출장중인 분이 내게 문의를 해 왔습니다. “고선교사님은 지금 한국에 나왔나요?”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고 선교사님이 한국에 나왔다고 이 부부에게 연락을 해서 고아들을 위한 헌금을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질문을 받고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성령님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을 곧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것도 즉시 고아들을 위해 보낼게요”라고 하더니 그분이 백만 원을 보내주셔서 모두 360 만원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채워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아들을 보살피는 곳에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 할빈에서 김영훈 전도사님이 잠시 귀국을 하였는데 그 교회는 집세가 일년에 사백만 원이 되었고 육 개월씩 나 누워서 지불을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선교회 첫 번째 세례자인 김영훈 전도사님은 우리가 다달이 보내는 후원금 외에 집세가 얼마 든다던 지 어렵다던 지 기도해 달라던지 일체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역시 홀리네이션스 사람답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이번에 잠시 귀국하여 곧 출국을 하는데 집세를 반년치를 마저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고아들을 돌보는 아버지의 마련하심 외에 그 집세도 동시에 채워졌습니다. 물론 “집세를 우리가 보내야 되겠으니 기도해 주세요” 라고도 간접적으로도 사람의 감정에 호소한적은 없습니다. 마련된 다음 그렇게 사용하였다고 헌금을 하신 분들에게 사용한 곳을 전하고 함께 기뻐한 것이 우리의 하는 방식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 헌금에 동참하는 회원은 이십 명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때를 맞추어 까마귀를 통하여 역사하시는데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중국할빈 지역은 아파트 한국으로 치면 32 평 정도 되는 곳을 세를 얻어서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 지역이 너무나 비싸서 새로 구입할 경우 일억 칠천만 원정도가 필요해서 우리는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헌금을 따로 비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이미 칠백만원도 넘는 돈이 순식간에 다시 마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정도 걸릴지 모르지만 느혜미야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성벽을 오십이일밖에 걸리지 않았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곧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며 바라봅니다. 느6:15-16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느6: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사랑하는 김영훈 전도사님이 사 년 반 만에 중국 할빈에서 활약을 하다가 잠시 귀국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십 삼년 전에 37 세였던 그의 모습이 이제는 오십이 되었고 또 한 명의 측량할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는 사역자가 된 모습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났습니다. 문득 언더우드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라고 시작할 때 처음 만난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의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하늘의 비밀을 전하는 멋진 하나님의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김전도사님은 중국신학교에서 한국에서 온 목사님들을 도와서 중국인에게 한국어 통역을 하고 문서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중국인들에게 보급하고 주일에는 교회를 맡아 중국인들을 상대로 설교하면서 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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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네이션스 선교 초창기에 우리 예배를 시작하자 마자 교회를 나왔고 복음을 처음 이곳에서 들은 김전도사님은 당시 공장에서 일을 할 때 찾아갔습니다. 그의 신실함에 따로 개인적으로 양육을 할 대상으로 뽑고 새벽에 성경공부를 일주일에 한번씩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주일 예배 한번 만으로는 불충분 하기에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공장 지역은 가로등도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에 도심에만 사는 사람들은 특히 중소기업이 있는 공장지대에 가보면 “여기가 한국인가?” 할 정도로 전혀 다른 세계에 놀랄 것입니다. 그런 지역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입니다. 중소기업이 있는 곳은 가로등이 없고 주로 컨테이너가 그들의 숙소인데 그곳에서 하나님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을 키우시는 것을 보면 기쁨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전에 발간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엄마 마마킴”이라는 책에 소제목 “어둠 속의 불꽃”의 주인공이었던 김영혼 전도사님의 기록이 이제는 중국인에게 복음을 들고 선 사람이 된 것을 보는 이 기쁨을 어찌 다른 기쁨과 비교할 수가 있겠는지요!!! 그때의 기록을 오늘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형제들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려면 4 시 30 분경에 얼어나야 새벽기도를 마치고 공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공장 근처는 가로등이 없어서 사방이 어두운데 그 어두움 속에서 우리 형제들이 나를 기다리며 전등을 켜놓아서 진기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 기쁘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전날 12 시나 1 시까지 일을 하고 잠이 들은 형제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있다가 나를 맞이하는 것이다. 중노동을 하는 그들에게 정말 불가능한 일인데 주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실 때 주님을 알기 원하는 마음을 주셨고 반복되는 말씀으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는 세례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기에 그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내게 세상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일년 동안 교회를 다녀서 이제는 대포 기도도 하는 형제도 있고 세례 받는 형제들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도와 말씀 읽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니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그런 새 힘으로 독수리의 날개 침같이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을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시에 모두 불법 체류자들이고 E9 비자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 김영훈 전도사님과 박만봉형제만 연수생 비자로 삼 년을 계약하고 왔었습니다.금은 조선족들에게는 특별 비자를 주는데 연수생 비자를 받기도 힘든 당시였고 그 비자를 받기 위하여 돈이 많이 들어서 한국에 오기 때문에 연수생으로 와서는 불법체류자로 남아버리는 것은 보통 상례였습니다. 한데 내가 두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법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지켜서 돌아가고 대신 한국에 와서 신학공부를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삶을 살자고 권유하였습니다.
정말 순종하기 힘든 제안인데 법을 지켜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던 날이 눈에 삼삼합니다. 후에 학생비자를 받고 돌아오기까지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진행을 하셨고 이미 중국에서 사역을 잘 하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외국인 공장 전도를 김영훈전도사님하고 장항동을 돌았습니다. 카자스탄에서 온 엘자전도사님하고 셋이 하면서 옛날에 새벽에 성경 공부하던 공장에 가서 추억의 거리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잠깐 동안 그 곳을 다니면서 전도하니 금방, 필리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베트남, 네팔에서 온 외국인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렇게 전도한 열매들이 또 하나의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는 이 보다 더 보람된 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엘자 전도사님에 내게 물었습니다. “권사님, 이 사역을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요? 아니면 기쁜 일이 더 많아요?” “주님이 살아계셔서 기도를 응답을 특별히 잘해주시는 체험을 할 때마다 힘든 일이나 어려웠던 기억은 저절로 사라지니 기쁜 일이 더 많지요.” 라고 대답하니 엘자전도사님도 그렇게 느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