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23)
하늘 궁정의 문이 열렸나요?
우리 집에는 8 살 6 살 4 살난 손자 손녀가 있습니다. 세 명은 밖에서 우리 집 앞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4 살 난 민서가 번호 키를 누른다고 아무 번호나 누르고 다음에 6 살 난 제윤이도 같이 누릅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표정이 “이렇게 누르면 열리던데 왜 안 열리지?” 하는 표정입니다. 그러면 뒤에 서 있던 8 살 난 제민이가 여유 있게 맞는 번호를 한번에 누릅니다. 그러면 금방 문이 열리고 와르르 따라 들어갑니다. 한데 두 꼬마는 번호 키를 외우지 못하니까 다음 번에 같은 실수를 꼬마들은 반복합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바로 보고 있노라면 늘 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열리지 않는다고 투 덜 됩니다. 하늘 궁정의 문의 번호 키를 모르기 때문에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투 덜 됩니다. 욥21: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성경을 바르게 묵상하고 그대로 번호 키를 누르지 않는 한 하늘의 궁정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몇 가지 모양을 보게 되는데 처음 시도를 해 보지 않은 사람, 일독을 해 본 사람, 아니면 몇 독을 해 본 사람들이 있는데 꾸준히 매일 최우선으로 성경을 통한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기에 번호 키를 잘 모릅니다.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몇 독을 했지만 정확히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번호 키를 한 개만 틀려도 문이 안 열리는 것은 아시죠?
사람들이 특히 잘 읽지 않는 부분이 구약이고 읽으라고 하면 신약이나 시편 잠언을 좀 읽고 부분만 읽기에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장엄한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내가 묵상한 바로는 구약을 읽지 않는 한 신약을 잘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성경의 놀라운 모델의 이야기들은 다 빠져 버리고 읽는 셈입니다. 구약의 인물들을 깊이 묵상하면 어떻게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구약은 아주 장엄한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우선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에스더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 느혜미야의 기도를 한번 묵상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각각 긴 내용도 아니기에 묵상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이렇게 아름다운 메시지를 속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는 명칭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내가 기도를 시작하면 나를 볼 때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말씀하시고 빨리 응답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단9:20-23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하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이 멋지게 응답을 받는 다니엘의 기도를 배우고 싶으면 9 장 3 절부터 19 절을 차분이 묵상하면 그 놀라운 기도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가 아닌 민족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회개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인 것을 알기에 우리는 늘 정결한 영이 최고의 능력이라고 함께 선포하며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회개와 감사보다 더 큰 능력은 없는 것을 성경을 보고 배웠습니다.
느혜미야 9 장도 얼마나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회개를 하는지를 한번 묵상을 해 보면 회개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고 번호 키가 속히 열려 하늘 궁정으로 들어가고 당신의 기도는 절로 이루어지는 것뿐 아니라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는 하나님의 응답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키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렇게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우리 것인데 믿음은 반복 하나님의 말씀 속에 거하고 그 말씀을 노상 귀에 들려주고 그 말씀을 따라가기 전에 입으로 “아멘 믿습니다” 해야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비슷하게 하는 것 같지만 전혀 실력이 다릅니다. 내가 하는 영어는 대충 통하는 정도입니다. 이십 대에 오 년 정도 미국인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였지만 내 영어실력은 어릴 때부터 닦은 영어와는 다릅니다. 우리 며느리는 지금 영어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세 살부터 미국에서 자라면서 배운 영어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영어를 하는 것 같지만 실력은 전혀 다릅니다. 남편이나 아들 딸 사위는 계속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일뿐더러 아들이나 딸도 어릴 때부터 국제학교를 거쳐서 대학을 나왔기에 나의 영어실력과는 다릅니다. 나는 보통 성경 가르칠 때는 외국인 에게 영어로 그냥 말하지만 선교회에서 말씀을 공식적으로 할 때는 정확하게 구사하는 가족들에게 번역을 부탁합니다. 주로 딸이 가장 많이 번역을 해주고 다른 가족도 기쁘게 해줍니다.
늘 영어 속에 살기에 그렇게 차이가 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로 늘 말씀 속에 거하면서 말씀을 깊게 묵상할 때 우리의 믿음의 키는 잘 열리는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의 기도나 느혜미야의 기도를 반복해서 백 번을 들었다고 하면 절로 그 기도가 따라서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 판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죄를 조금이라도 지어서 회개하는 수고를 하기 보다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기쁨은 세상에서 내가 조금 더 유익을 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눈이 너무 와서 빙판이 된 길에서 내가 잠시 정차하고 있는데 뒤에서 온 차가 내 뒤를 박아버렸습니다. 그 차 운전 주는 젊은 청년이었고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브레이크가 전혀 듣지 않았다고 보험 처리해서 다 배상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운전을 하고 오는데 늘 말씀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주님이 그 상황에서 나를 어떻게 보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으로 빙판진길, 반드시 그의 잘못만도 아닐진대 그것을 받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가 처신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그분의 차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그냥 내가 낼 터이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주님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돈 얼마를 받는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청년은 미안하니까 선물이라도 보낸다고 하였지만 극구 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 청년에게는 매일 카톡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한번은 내가 잘못해서 용달차 옆을 긁었습니다. 그분은 일산 사는 분도 아닐진대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분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모두 배상을 하면서 그분의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전도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인천시 계양구의 한 교회 초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아침에 내가 보내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지내게 된다고 하며 종종 안부를 보내오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회개하고 죄를 통회하며 감사로 우리의 기도를 올려드릴 때 그렇게 기도는 넘치게 응답을 받게 됩니다. 오늘 현관 앞에서 번호 키를 정확히 알고 누르시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야 됩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단순한 믿음, 정결한 영혼의 믿음이 얼마나 능력을 나타내는지 우리는 늘 목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토요 성경공부 외에 일년에 자체 내에서 두번 여름 겨울 수련회를 하는데 아주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멋진 결과를 낸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이름은 황지우 입니다. 예쁜 지우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안고 있다가 떨어트려서 걷지를 못하고 몇 년 휠체어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했다가 초등학교를 휴학을 할 때 수련회에 온 것입니다. 얼마나 영혼이 아름다운지요!! 어리지만 수련회 때 엄마 아빠를 따라서 먼 곳에 와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몇시간을 참석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수련회를 마치고 “지우야, 예쁘게 잘 들었으니 이제 믿음으로 일어나 볼까?” 아마 어른들 같으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했겠지만 순수한 지우는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교회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앞에 강대상까지 뒤퉁 거리지만 걸어 나왔습니다. 모두 박수를 치고 바라보고 있으면서 다시 뒤로 돌아갈 때 “이제 수고 했으니까 힘들면 돌아갈 때는 휠체어를 타고 가렴” 했더니 그냥 걷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 정도 넘어졌지만 지우는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다시 학교를 복학해서 일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잠시 전에 이 글을 쓰기 전에 확인을 해 보았더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수업을 마치면 엄마 손을 잡고 걸어서 집에 잘 돌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순 전한 지우는 정확하게 믿음의 키를 눌렀기에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주의 영광을 보리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그런데 내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일까요?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