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100 독 마친 독후감(10)
성경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되어서 그 당시로 돌아가서 그 상황 속에서 기분이 어떠했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곤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서 두 관원들의 꿈을 해석해 주고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이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고 해석해 줄 사람이 없을 때까지 복직한 관원은 잊었습니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나는 요셉의 심정이 되어 보곤 했습니다. “요셉은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고 평온하며 잘 지내고 있었을까? 아니면 때로는 답답했을까?” 라고 말입니다.
물질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한 소년의 마음을 묵상해 봅니다. 자신이 먹으려고 했던 평범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 앞에 가져갔을 때 그의 눈앞에는 듣도 보도 못한 놀라운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펼쳐 졌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은 것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 소년이 다음에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기쁘게 자신의 점심을 드렸을까요? 아니면 지난번에는 그랬지만 이번에는 내가 먹어야지? 그랬을까요? 똑 같은 기적을 보았지만 소년은 직접 드린 자였기에 그 기적이 더 감격스러워 계속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지만요.
제자들은 기적을 보았지만 자신이 드린 것이 아니기에 소년의 기쁨과 달랐고 그들은 다음에도 전혀 믿음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마16:7-10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우리 선교회는 헌금을 하는 선교회원은 이십 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13 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수십억에 달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결과는 그렇지만 과정가운데서 작년 같은 경우는 외국인 애기가 세 명 연속으로 몇 주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두 명은 정상적으로 순산을 하였지만 한 명만 의료보험이 있고 다른 애기는 의료보험은 물론 없고 우리 쉼터에 와서 화장실 들어갔다가 양변기에 애기를 쏟았고 탯줄을 끊지 않은 상태로 엠브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애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한다면 특별 회의를 소집해서 돈을 주느냐 마느냐 할 것인데 우리 선교회는 아예 그런 돈이 마련되어서 진행을 해 본적이 없기에 그런 회의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결혼식도 7 쌍을 시켜 주었는데 합동결혼식을 한 것이 아니고 한 쌍씩 시켜주었습니다. 오 년 전에는 네팔로 돌아가서 사역을 하고 있는 슈랜드라 메뉴카전도사님 부부와 중국으로 돌아간 최화 전도사님 부부 결혼식을 두 달 사이에 따로 따로 진행했습니다. 나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권사님, 결혼식 두 달 사이에 따로 하지 말고 같이 하면 비용이 덜 들 터인데 왜 그렇게 하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권사님 자녀들이라면 합동 결혼식 시키실 건가요? 아니죠? 신 학생들은 내 자녀나 마찬가지이고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이기에 따로 해 주어야 되요.” 라고 웃으면서 대답했고 따로 했습니다. 물론 준비된 돈이 쌓여 있는 것 아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셔야 하기에 역시 회의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슈랜드라 메뉴카전도사님 부부에게 신부화장을 시켜주러 미장원에 태워가지고 가면서 또는 양복을 맞추기 위해 같이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사랑을 주님이 해주신 것같이 네팔에 가서도 그대로 하면 되요.” 라고 했더니 이미 그곳에서는 한 쌍의 부부를 결혼식을 시켜 주었습니다. 몽골에 나라, 마그나이 목사님 부부는 여기서 수 많은 신학생을 공부시켜준 데로 자신들도 두 명의 몽골사람들을 신학 공부를 시키고 마친 다음 사역을 그곳에서 돕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본대로 하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일은 오늘 기쁨으로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 과정을 펌프에 물이 나오려면 먼저 펌프에 물을 붓는데 물을 부을 때 조금 부으면 물은 잘 나오지 않고 많이 부으면 콸콸 물이 솟는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성경은 이 원리를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선교사가 일을 진행하면서 물질에 궁핍함에 처했을 때 먼저 펌프에 물을 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드리니 “부을 물이 없다”라고 대답하는 분들을 봅니다. 하나님은 액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사르밧 과부에게서 먹고 죽을 마지막 가루는 그의 믿음의 표현이었고 소년이 드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이 드린다는 것은 빚을 지고 하는 행위가 아닌 하나님 방법대로 열심히 일을 한 것으로 최선을 다한 믿음의 행위의 표현입니다. 이 원리를 따라가지 않을 때 언제나 현실에 문제는 풀리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원리대로 했을 때 아기를 세명 연속으로 태어나는 일 이라던지 결혼식을 준비하는 일 이라던지 어떤 상황에도 모자라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현실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수시로 내게 질문을 하십니다. 눅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우리 선교회에는 교사팀, 의료팀, 식당봉사팀, 찬양리더가 있지만 첫날 같이 교회에 등록을 한 박윤태집사님이 일본에서 해외근무를 하고 우리는 홍콩, 말레이시아에서 근무하고 귀국한 후 같이 선교회를 시작하여 13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같이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함께 보는 즐거움으로 지냈기에 이 시간에 서로 갈등이나 고통이나 무거운 짐을 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시는 즐거움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들도 왜 그런 일을 하면서 안 해도 될 걱정을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눈에는 늘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주님의 행하시는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새벽 1 시 40 분에 눈을 떴습니다. 일어나서 해외에서 온 문자를 보니 “하나님께 쓰임 받아서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헌금을 보낸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요 며칠 새에 박정화전도사님과 영하 40 도를 계속 되는 지역에 석탄값을 지원해야 되지 않을까 나누었는데 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 그곳에는 눈이 오기 시작하였고 많은 어린이들이 있는 그곳에 석탄값이 없으면 교회가 추워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채우신다는것은 주님의 약속이고 누구 개인의 은사도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가르쳐 준 순서를 따르지 못해서 못 보는 일인 것뿐입니다.
그 문자를 보낸 손길이 너무 기뻐서 나는 또 잠을 자지 않고 그 시간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제는 전남 광주교도소에 디모데를 면회하고 와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피곤하다고 할 터인데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샘솟는 에너지가 달려가게 만듭니다. “당신께 이 행복 전하고 싶어요.”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